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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잡이(Thief-taker)
약 1690–1829
공공 경찰 조직이 존재하기 전, 잉글랜드에서 절도 피해자들은 장물을 되찾거나 범인을 잡기 위해 사설 '도둑잡이'에게 보상금을 지불했다. 이 체제는 부패하기 너무 쉬워서, 런던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도둑잡이 조너선 와일드는 1725년 교수형에 처해질 때까지 자신이 해결하는 대가로 돈을 받은 절도단을 몰래 운영했다. 보 스트리트의 유급 순경, 그리고 이후 필의 봉급제 조직이 범죄를 예방하는 대신 이익을 취하려는 금전적 유인을 없애자 이 역할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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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스트리트 러너
1749–1839
치안판사 헨리 필딩이 창설하고 이복형제 존이 확대한 런던 최초의 준전문 수사 조직으로, 피해자나 법원이 지불하는 수수료를 받고 사건을 수사했으며 도시의 주요 도로를 도보와 기마로 순찰하기도 했다. 1830년대에 걸쳐 점차 커지던 수도경찰청 수사국에 흡수되었고, 러너스는 1839년 공식 해체되어 그 기능이 새로운 민간 조직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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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순경
1285–1829
윈체스터法에 따라 잉글랜드의 모든 교구는 훈련도 받지 않고 딱히 원하지도 않는 임기를 수행하는 평범한 상인이나 노동자를 무보수 순번제 야경꾼으로 세워, 밤에 순찰하고 위그 앤 크라이에 응답하게 해야 했다. 18세기에는 무능하다고 널리 조롱받았으며(셰익스피어의 얼빠진 순경 도그베리가 바로 이 유형을 본뜬 것이다), 필의 유급·훈련된 순경들이 같은 거리를 넘겨받으면서 이 역할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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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엔지니어(Knowledge engineer)
1970년대~1990년대
의사, 지질학자, 화학자 등 인간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노하우를 MYCIN이나 XCON 같은 전문가 시스템을 위한 수천 개의 조건-결과 규칙으로 손수 옮겨 적는 전문가였다. 전문가 시스템이 유지하기에는 너무 취약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통계적 머신러닝이 손으로 짠 규칙을 데이터로부터 자동으로 학습한 규칙으로 대체하면서 이 직업은 대부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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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업 특징 설계자(Hand-crafted feature engineer)
1990년대~2012년
딥러닝 이전에는 컴퓨터 비전이나 음성 시스템이 잘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 연구자가 적절한 입력 특징을 직접 설계하는 데 달려 있었다. 이미지용 SIFT나 HOG 같은 엣지 검출기, 오디오용 켑스트럼 계수 등이 그 예로, 그 자체로 하나의 전문 기술이었다. 원시 데이터로부터 스스로 특징을 학습하는 신경망이 등장하면서 2012년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이런 설계 작업 대부분이 쓸모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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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프 머신 엔지니어(Lisp machine engineer)
약 1975년~1988년
심볼릭스(Symbolics)나 리스프 머신스(Lisp Machines Inc.) 같은 회사들은 AI 연구가 의존하던 리스프(Lisp)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동하도록 최적화된 전용 워크스테이션을 만들어 팔았고, 이를 설계·판매·유지보수할 엔지니어를 고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저렴한 범용 워크스테이션이 순수 성능에서 이를 따라잡으면서, 리스프 머신 산업 전체가 약 2년 만에 붕괴했다. 이는 두 번째 AI 겨울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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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박물학자
1660년경~1900년
성직자, 지주, 퇴역 장교 등 대학 직위가 없는 부유한 아마추어들이 두 세기 넘게 박물학을 주도하며 왕립학회 같은 학술단체에 논문을 발표하고 개인 진열장을 조개껍데기·화석·핀으로 고정한 곤충으로 채웠다. 1800년대 후반부터 대학 학과와 유급 연구직이 이 분야를 전문화하면서, 정규 교육이 아니라 여가와 호기심만으로도 가능했던 이 역할은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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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표본 수집가
1750년경~1930년대
젊은 시절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같은 박물학자들은 해외에서 진귀한 표본을 수집해 본국의 박물관, 부유한 개인 수집가, 딜러에게 판매하는 것만으로 생계를 꾸렸다. 새 한 마리, 딱정벌레 한 마리마다 시세가 매겨지는 진짜 시장이었다. 보호법과 세관 규제, 그리고 급여를 받는 박물관 원정대 직원의 등장은 점차 프리랜서 채집을 생계 수단에서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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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사-약초학자
1200년경~1800년대
약리학과 식물학이 별개의 학문으로 갈라지기 전, 약제사들은 약초를 보고 냄새 맡고 맛보아 정확히 식별하는 법을 몇 년에 걸쳐 익혔다. 잘못 식별한 약초는 환자를 낫게 하기는커녕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화학 분석, 표준화된 투약, 공식 약사 면허 제도는 이 식물 식별 기술을 실험실에서 검증된 의약품으로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