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커(폐마 처리업자)는 병들거나 죽어가거나 쇠약한 가축을 도살과 폐기용으로 수거했으며, 다른 수의학적 대안이 없던 시절에는 사실상 어떤 동물을 살릴 수 없는지 판단하는 역할까지 했다. 19~20세기에 동물복지법과 수의 면허법이 강화되면서 그 진단적 판단은 면허 수의사에게로 넘어갔고, 나커의 업무는 규제된 사체 처리로만 남았다.
나커의 의학적 판단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편자공의 천 년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편자공은 대장장이이자 말의 의사 역할을 겸했다. 절름거림, 산통, 상처를 정규 교육이 아닌 도제 제도로 치료했고, 소와 양에 민간요법을 처방하는 떠돌이 '소 치료사'들도 함께 활동했다. 이 방법들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검증할 과학 기관은 존재하지 않았고, 치료의 질은 오로지 장인 개개인의 입소문 실력에 달려 있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클로드 부르줄라가 루이 15세의 명으로 리옹에 왕립 수의학교를 세운다. 가축 질병을 편자공의 민간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다뤄 우역과 싸우려는 목적이었다.
런던 수의학교(훗날 왕립수의과대학)가 문을 열며 영어권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수의학교로 자리 잡는다.
수의사 J. B. 사이먼즈가 런던의 소에서 우역을 진단한 뒤, 의회는 가축질병예방법을 통과시키고 국가 수의국을 창설한다. 이는 정부 동물보건기관의 초기 모델이 된다.
미국 최초로 수의학 학위를 받은 다니엘 엘머 새먼이 미국 동물산업국의 초대 국장이 된다. 이는 미국 최초의 연방 수의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