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터키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유럽 언어에 능통한 통역 겸 외교관인 드라고만은 콘스탄티노플의 유럽 대사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개자였으며, 종종 고용주가 직접 할 수 없는 협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럽의 자체 어학 교육 확대, 영사 제도 개혁, 그리고 1922년 이후 오스만 제국 자체의 해체는 한때 이 역할을 세습하다시피 독점하던 전문 드라고만 가문들을 점차 사라지게 했다.
드라고만(통역외교관)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로마, 비잔티움, 교황 특사
로마는 군단의 위협을 배경에 둔 사절을 파견하고 국가 간 관계를 규율하는 초기 만민법 '유스 젠티움'을 발전시켰다. 비잔티움은 외교를 하나의 연극으로 만들어 화려한 궁정 의식과 기계 장치로 외국 사절을 압도하며, 축소되어 가는 제국이 더 이상 온전히 가지지 못한 힘을 과시했다. 한편 중세 교황청은 교황의 권위를 지닌 특사를 기독교 세계 전역에 파견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베네치아 원로원은 귀임하는 모든 대사가 자신이 근무한 궁정의 정세, 자원, 인물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 '렐라치오네'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이례적일 만큼 솔직한, 역사가들이 지금도 캐내는 체계적인 정치 정보 문서고를 만들어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루이 13세 치하에서 외교 업무를 전담하는 국가 부서를 설립해 산발적이던 왕실 서신 업무를 상설 전문 관료 조직으로 집중시켰다. 오늘날 대부분 정부가 운영하는 외무부의 직계 조상이다.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서 협상되어 30년 전쟁을 끝낸 이 조약은 종교와 무관하게 주권국가들이 법적으로 대등한 존재로서 서로를 상대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국가 간 외교 체제의 근본 전제다.
술탄 아흐메드 3세는 이르미세키즈 메흐메드 첼레비를 루이 15세의 궁정에 파견하며 단순 인사가 아니라 프랑스 제도를 면밀히 연구하라 지시했다. 그의 보고서는 개혁 성향의 튤립 시대와 1727년 오스만 최초의 인쇄소 설립에 영감을 주었다고 널리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