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회 쇼단은 미국과 유럽 농촌을 돌며 음악, 코미디, 연출된 "기적의 치료" 같은 무료 오락과 특허 약(상당수가 화려한 병에 담긴 알코올이나 아편이었다)의 고압적 판매를 결합했다. 키카푸 인디언 약 회사 같은 업체는 1880년대 전성기에 수십 개 순회단을 운영했다. 1906년 미국 순정식품의약품법과 1930년대까지 강화된 약품 규제가 이 업을 사실상 죽였고, 쇼 역시 함께 사라졌다.
약장수 행상인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인쇄와 과장 광고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설득을 복제 가능하게 만들었다. 캑스턴은 1477년 잉글랜드 최초의 광고를 인쇄했고, 17세기 런던 신문은 커피, 책, 돌팔이 약 광고로 가득했다. 18세기에 이르러 새뮤얼 존슨은 『아이들러』(1759)에서 이미 광고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매우 무성의하게 훑어본다"고 불평했으며, 이는 갈수록 더 과장된 약속을 낳았다. 이 시대의 유산은 신뢰의 문제다. 인쇄는 주장을 신뢰보다 훨씬 빠르게 확장시켰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볼니 B. 파머는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최초의 광고 대행사를 열어 신문 지면을 대량으로 매입한 뒤 수수료를 받고 광고주에게 재판매했다. 그가 즉흥적으로 만든 수수료 모델은 이후 한 세기 반 동안 에이전시 경제 구조를 지배했다.
모든 캠페인에 키가 붙은 쿠폰을 달아 각 광고의 판매 실적을 세었던 클로드 C. 홉킨스는 수십 년간의 측정 결과를 『Scientific Advertising』으로 압축했다. 이는 테스트 문화의 창시적 텍스트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훗날 누구도 이 책을 일곱 번 읽지 않고서는 광고에 손대선 안 된다고 썼다.
카메이 비누가 아이보리 옆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데 좌절한 P&G의 말단 광고 담당자 닐 맥엘로이는, 각 브랜드마다 한 사람과 한 팀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서로 라이벌처럼 내부 경쟁하도록 하자는 세 쪽짜리 메모를 썼다. 이 메모가 브랜드 매니저 — 현대 마케터의 원형 — 를 만들었다. 맥엘로이는 훗날 미국 국방장관이 되었다.
1941년 7월 1일, 뉴욕 방송국 WNBT에서 열린 다저스 대 필리스 경기 전, 불로바는 약 9달러를 지불하고 최초로 합법적인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냈다. 미국 지도 위에 겹쳐진 시계 화면과 함께 "미국은 불로바 시간에 맞춰 돌아간다"는 문구였다. 텔레비전은 이후 20년 안에 마케팅 예산을 장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