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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마스터 — 사라진 직업

웹마스터 (1993–2000년대) — 웹 초창기 10년 동안 한 명의 '웹마스터'가 웹사이트 전체를 설계, 코딩, 콘텐츠 작성, 운영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았다. 이 단어는 1993년 사전에 등재되었고 1997년 인터넷 표준으로 전용 이메일 주소까지 얻었다. 사이트가 복잡해지면서 이 역할은 프론트엔드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 데브옵스 엔지니어, 콘텐츠 편집자로 나뉘었고, '웹마스터'는 채용공고에서 사라졌다.

웹마스터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1993–2000년대

웹 초창기 10년 동안 한 명의 '웹마스터'가 웹사이트 전체를 설계, 코딩, 콘텐츠 작성, 운영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았다. 이 단어는 1993년 사전에 등재되었고 1997년 인터넷 표준으로 전용 이메일 주소까지 얻었다. 사이트가 복잡해지면서 이 역할은 프론트엔드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 데브옵스 엔지니어, 콘텐츠 편집자로 나뉘었고, '웹마스터'는 채용공고에서 사라졌다.

1950년대–1960년대

메인프레임과 배치 프로그래밍

초창기 프로그램은 천공카드 뭉치로 제출되어 밤새 배치로 실행되는 경우가 많아, 오타 하나가 프로그래머에게 다음 실행까지 하루를 통째로 날리게 만들 수 있었다. 수학자들, 그리고 많은 수의 여성들이 손 계산에서 곧바로 이 새로운 '프로그래밍' 작업으로 옮겨왔는데, 당시 이 일이 명예로운 일이 아니라 사무적이고 세밀한 작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포트란(1957)과 코볼(1959)이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았고, 이 하드웨어 위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형 시스템을 만드는 순전한 어려움이 다음 시대가 이름 붙이고 해결하려 할 '소프트웨어 위기'를 예고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1957 포트란이 IBM 704용으로 출시되다

존 배커스가 이끈 IBM 팀이 약 2년의 작업 끝에 포트란을 내놓는다. 2년 안에 미국에서 실행되는 기계 코드의 절반 이상이 포트란으로 작성되었다고 전해진다.

1968 NATO 회의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이름을 붙이다

서독 가르미슈에서 열린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대형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다리나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고 의도적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용어를 빌려 쓰며, 이 분야의 만성적인 초과 비용을 '소프트웨어 위기'로 규정한다.

1969–1973 벨 연구소에서 유닉스와 C가 형태를 갖추다

켄 톰프슨과 데니스 리치는 남는 PDP-7에서 유닉스 운영체제를 만든 뒤, 1973년 리치의 새 언어 C로 다시 작성해 여러 종류의 컴퓨터에서 돌아가게 한다.

1981 IBM PC가 모든 책상에 소프트웨어를 가져오다

IBM의 PC가 마이크로소프트의 PC-DOS와 함께 출시되며 소프트웨어를 거의 하룻밤 사이에 대중 소비재로 바꾸고, 6년 전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알테어 베이직으로 세운 젊은 회사를 굳건히 자리 잡게 한다.

그 일은 지금 어디에 있나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코드를 작성하고 테스트하고 유지보수하는 직업이며, AI가 자기 일상 업무를 자동화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지켜보는 직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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