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초창기 10년 동안 한 명의 '웹마스터'가 웹사이트 전체를 설계, 코딩, 콘텐츠 작성, 운영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았다. 이 단어는 1993년 사전에 등재되었고 1997년 인터넷 표준으로 전용 이메일 주소까지 얻었다. 사이트가 복잡해지면서 이 역할은 프론트엔드 개발자, 백엔드 개발자, 데브옵스 엔지니어, 콘텐츠 편집자로 나뉘었고, '웹마스터'는 채용공고에서 사라졌다.
웹마스터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메인프레임과 배치 프로그래밍
초창기 프로그램은 천공카드 뭉치로 제출되어 밤새 배치로 실행되는 경우가 많아, 오타 하나가 프로그래머에게 다음 실행까지 하루를 통째로 날리게 만들 수 있었다. 수학자들, 그리고 많은 수의 여성들이 손 계산에서 곧바로 이 새로운 '프로그래밍' 작업으로 옮겨왔는데, 당시 이 일이 명예로운 일이 아니라 사무적이고 세밀한 작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포트란(1957)과 코볼(1959)이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았고, 이 하드웨어 위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형 시스템을 만드는 순전한 어려움이 다음 시대가 이름 붙이고 해결하려 할 '소프트웨어 위기'를 예고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존 배커스가 이끈 IBM 팀이 약 2년의 작업 끝에 포트란을 내놓는다. 2년 안에 미국에서 실행되는 기계 코드의 절반 이상이 포트란으로 작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서독 가르미슈에서 열린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대형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다리나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규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려고 의도적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용어를 빌려 쓰며, 이 분야의 만성적인 초과 비용을 '소프트웨어 위기'로 규정한다.
켄 톰프슨과 데니스 리치는 남는 PDP-7에서 유닉스 운영체제를 만든 뒤, 1973년 리치의 새 언어 C로 다시 작성해 여러 종류의 컴퓨터에서 돌아가게 한다.
IBM의 PC가 마이크로소프트의 PC-DOS와 함께 출시되며 소프트웨어를 거의 하룻밤 사이에 대중 소비재로 바꾸고, 6년 전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알테어 베이직으로 세운 젊은 회사를 굳건히 자리 잡게 한다.
그 일은 지금 어디에 있나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코드를 작성하고 테스트하고 유지보수하는 직업이며, AI가 자기 일상 업무를 자동화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지켜보는 직업 중 하나다.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