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관광의 첫 시대에, 포터 팀은 리기 같은 전망 좋은 봉우리로 부유한 방문객들을 가마에 태워 날랐다 — 마크 트웨인은 1880년 '해외 방랑기'에서도 여전히 분주한 리기의 관광 시스템을 묘사했다. 1871년 피츠나우에서 리기까지 개통된 유럽 최초의 산악 등산 철도는 이 직업을 거의 하룻밤 사이에 끝냈다. 철도는 관광객은 남기고 포터는 버렸다.
정상용 가마 포터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고개 안내인, 사냥꾼, 수정 채집꾼
수 세기 동안 알프스는 오르는 대상이 아니라 넘는 대상이었다. 전문 고개 안내인들이 순례자와 상인을 큰 고개 너머로 안내하는 동안, 고산 계곡의 산양 사냥꾼과 수정 채집꾼들은 눈다리 읽기, 계단 깎기, 날씨 판단 같은 실용적인 빙하 기술을 쌓았다 — 훗날 가이드업의 재료가 될 기술들이다. 봉우리 자체는 쓸모없고 저주받았다고 널리 믿어졌으며, 아무도 정상에 서기 위해 돈을 내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1786년 8월 8일, 수정 채집꾼 자크 발마와 마을 의사 미셸가브리엘 파카르는 약 4,806m의 몽블랑 정상에 도달했다. 샤모니에서 망원경으로 이를 지켜보았고, 1760년 드 소쉬르가 내건 상금을 차지했다. 이 등정은 하나의 직업을 만들어냈다. 이듬해 드 소쉬르 본인이 발마와 지역 가이드·포터 팀의 안내를 받아 정상에 올랐다.
1820년 과학 탐사였던 아멜 원정에서 눈사태로 샤모니 가이드 세 명이 사망하자, 골짜기는 샤모니 가이드 조합을 결성했다 — 세계 최초의 전문 가이드 협회로, 고정 요금표, 업무를 나누는 순환 시스템, 근무 중 사망한 가이드의 미망인과 자녀를 위한 구제 기금을 갖췄다.
오귀스트 발마의 안내를 받은 영국 판사 알프레드 윌스의 그린델발트 위 베터호른 등정은 알피니즘 황금기의 통상적인 시작으로 여겨진다. 두 젊은 지역민 크리스티안 알머와 울리히 카우프만은 정상에 심을 어린 전나무를 들고 등반에 끼어들었다. 처음엔 경쟁자로 오인받았으나 윌스 일행과 함께 등정을 마쳤다. 이후 11년 사이 가이드들은 알프스의 거의 모든 주요 봉우리를 초등하게 된다.
1865년 7월 14일, 에드워드 윔퍼 일행 7명은 샤모니 가이드 미셸 크로의 안내로 마터호른 초등에 성공했다. 하산 중 가장 경험이 적은 고객이 미끄러지면서 로프가 끊어졌고, 크로와 고객 세 명이 약 1,200m 아래로 추락사했다. 체르마트 조사위원회는 생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 참사는 '누구의 목숨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가이드의 딜레마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 일은 지금 어디에 있나
낯선 이들을 세계의 위대한 산 정상으로 이끌고, 무엇보다 무사히 하산시키는 공인 전문가. 1821년 샤모니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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