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신호가 있기 전, 관측소는 시간이 나오는 곳이었다 — 그리니치는 1833년부터 공개 타임볼을 떨어뜨려 템스강의 배들이 크로노미터를 맞출 수 있게 했다. 벨빌 가문은 이를 사업으로 만들었다 — 존 벨빌, 그리고 훗날 그의 딸 루스는 '아널드'라는 이름의 회중시계를 들고 매주 그리니치에서 런던의 구독자들에게 시간을 팔러 다녔다. 루스 벨빌은 전화 발화 시계가 마침내 이 업을 끝낸 1940년, 80대의 나이로도 여전히 순회를 계속하고 있었다.
시간 판매자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망원경이 질문을 바꾸다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하늘을 빛의 무늬가 아니라 풍경이 있는 장소로 바꾸었고, 케플러의 법칙은 행성표를 물리학으로 바꾸었으며, 1687년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이 둘을 한꺼번에 설명했다. 파리(1667)와 그리니치(1675)의 국립 관측소는 경도와 시간을 확정하기 위해 천문학자를 국가 봉급자로 만들었고, 1781년 잉글랜드에 정착한 하노버 출신 음악가 윌리엄 허셜은 자기 집 뒷마당에서 천왕성을 발견해 태양계의 알려진 크기를 두 배로 늘렸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프리드리히 베셀은 백조자리 61번별의 연주시차를 측정했다 — 약 1/3각초로, 이는 그 별이 대략 10광년 떨어져 있음을 뜻했다. 토머스 헨더슨과 빌헬름 스트루베가 거의 그를 앞지를 뻔했던 이 측정은 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는가를 둘러싼 이천 년 묵은 논쟁을 끝냈다.
소마젤란은하의 사진 건판으로부터 하버드의 '컴퓨터'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맥동 주기가 그 실제 밝기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보여, 세페이드를 거리 표지로 바꾸어 놓았다. 허블의 측정을 포함해 이후 측정된 모든 우주적 거리는 관측소 소장의 이름으로 발표된 세 쪽짜리 회보에 실린 이 관계식 위에 서 있다.
베스토 슬라이퍼와 밀턴 휴메이슨이 대부분 측정한 적색편이와 리비트의 법칙에 따른 거리 값을 윌슨산의 100인치 망원경으로 결합해, 에드윈 허블은 은하들이 거리에 비례하는 속도로 멀어진다는 사실을 보였다. 조르주 르메트르는 1927년 프랑스어로 된 벨기에 학술지에서 이미 이 법칙을 이론적으로 유도한 바 있었고, 2018년 IAU는 이를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개칭하기로 표결했다.
1967년 11월 28일, 케임브리지 박사과정생 조슬린 벨 버넬은 전파 탐사 차트지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6밀리미터 남짓한 '잡음'이 1.337초마다 펄스를 내는 천체 — 최초의 펄사, 즉 회전하는 중성자별 — 임을 확인했다. 이 발견에 대한 1974년 노벨상은 그녀의 지도교수 앤터니 휴이시에게 돌아갔고, 이 누락은 지금도 논쟁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