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과 변천사

반도체 엔지니어 · 컴퓨터, 휴대폰, 무기 등 거의 모든 전자기기 내부의 트랜지스터를 설계하고 제조하며, 지구상 극소수 공장만이 다룰 수 있는 초정밀 장비를 다룬다.

반도체 엔지니어링의 역사는 당시에는 작은 실험실 밖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벨 연구소의 시연, 집적회로를 진짜로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둘러싼 특허 분쟁, 한 업계 전체가 단순한 관측이 아니라 지침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잡지 기사, 그리고 '자사 고객과 절대 경쟁하지 않는 공장'이라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로 사업 전체를 재구성한 대만 경영자를 거쳐 이어진다.

또한 지리적으로 계속 다시 쓰이는 역사이기도 하다. 같은 기술이 벨 연구소, 실리콘밸리, 신주, 펠트호벤이라는 소수의 장소에 반복해서 집중되었고, 그 집중은 이제 기업뿐 아니라 정부까지 계획을 세우는 전략적 사실이 되었다.

시작된 곳

1947년 12월 16일미국 뉴저지주 머리힐

벨 전화연구소에서 물리학자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이 게르마늄 조각과 금 접점 두 개로, 부피가 크고 전력을 많이 먹는 진공관 대신 전기 신호를 증폭하는 작동하는 점접촉 트랜지스터를 시연한다. 초기 시연에서 배제된 데 불만을 품은 동료 윌리엄 쇼클리는 몇 주 만에 더 실용적인 접합형 트랜지스터 설계를 개발하고, 세 사람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벨 연구소는 1948년 6월까지 공개 발표를 미루었고, 이 작은 실험대가 방금 진공관을 대체해 현대 전자공학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온전히 깨닫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렸다.

연표

1947년벨 연구소에서 최초의 트랜지스터 시연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이 12월 16일 작동하는 점접촉 트랜지스터를 시연하고, 몇 주 뒤 윌리엄 쇼클리의 접합형 트랜지스터 설계가 뒤따른다. 세 사람 모두 훗날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1954년최초의 상용 실리콘 트랜지스터 출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화학자 고든 티얼이 최초의 실용적인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성장시켜, 그때까지 쓰이던 게르마늄을 대체한다. 실리콘이 훨씬 높은 온도를 견디는 능력 덕분에 업계 전체가 표준으로 삼는 재료가 된다.

1958–1959년킬비와 노이스, 독립적으로 집적회로를 발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는 1958년 9월 게르마늄 한 조각 위에서 작동하는 회로를 시연하고,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로버트 노이스는 1959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실리콘 버전으로 경쟁 특허를 출원하면서 10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시작된다.

1965년고든 무어, 훗날 무어의 법칙이 되는 논문 발표

무어는 일렉트로닉스 잡지 기고문에서 단 다섯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바탕으로 칩 위 부품 수가 대략 매년 두 배씩 늘어난다고 외삽하는데, 업계는 이를 자기실현적 로드맵으로 바꾸어 놓는다.

1968년노이스와 무어, 인텔 창업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떠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인텔을 창업하고, 곧 직원 3호로 앤디 그로브가 합류한다. 회사는 메모리 칩, 이후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의 지배적 제조사가 된다.

1971년인텔, 최초의 단일 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 출시

페더리코 파긴이 자신이 페어차일드에서 개발한 실리콘 게이트 공정을 적용해 설계와 레이아웃을 주도하고, 테드 호프, 스탠리 마조르, 마사토시 시마가 아키텍처를 다듬는다. 이제 컴퓨터 전체의 논리 회로가 칩 하나에 담긴다.

1980년미드와 콘웨이, '초고밀도 집적 시스템 개론' 출간

카버 미드와 린 콘웨이의 교과서는 칩 설계를 구조화되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론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듬해 시작된 MOSIS 셔틀 서비스는 대학이 학생들의 칩 설계를 처음으로 실제 제조할 수 있게 해준다.

1987년모리스 창, TSMC와 파운드리 모델 창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25년을 보낸 창은 대만 정부 자금과 네덜란드 필립스와의 기술 라이선스 계약 일부를 받아 신주에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TSMC)를 설립한다. 이는 다른 회사를 위해 칩을 제조하지만 자체 설계는 하지 않는 파운드리다.

2019년EUV 리소그래피, 대량 칩 생산에 진입

TSMC와 삼성이 네덜란드 ASML만이 제작하는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스캐너를 대량 생산에 도입한다. 업계가 20년 넘게 만에 채택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터닝 파장이다.

2022년미국 칩스법과 수출 통제가 업계를 재편

미국이 국내 칩 제조·연구에 527억 달러를 배정하는 칩스와 과학법에 서명하고, 10월에는 중국에 대한 첨단 칩 및 칩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면서 이 직업에 명시적으로 지정학적인 시대를 연다.

시대별 흐름

1947–1959년

진공관에서 점접촉을 거쳐 평면형 실리콘으로

바딘과 브래튼의 시연 이후 10년은 트랜지스터를 단순히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신뢰할 수 있고 제조 가능하게 만드는 데 바쳐졌다. 초기 점접촉 소자는 취약하고 불안정했다. 쇼클리의 접합형 트랜지스터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나온 고든 티얼의 실리콘 버전이 이 기술을 보청기와 휴대용 라디오 같은 실제 제품에 쓸 만큼 견고하게 만들었다. 10년이 끝날 무렵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는 각자 트랜지스터 하나가 아니라 회로 전체가 반도체 한 조각 위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시대 이후의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발상이었다.

Die of the Intel 4004, the first commercial single-chip microprocessor
Thomas Nguye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1965–1975년

무어의 법칙과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탄생

고든 무어의 1965년 예측은 10년간의 극적인 발전을 업계의 명시적 목표로 바꾸어 놓았고, 기업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해에 걸친 공장 투자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1968년 창립된 인텔은 메모리 칩으로 초기 사업을 다졌고, 이후 페더리코 파긴의 팀이 1971년 컴퓨터 전체의 논리 회로를 단일 칩 인텔 4004에 접어넣었다. 별도의 부품이 가득한 회로기판이 아니라 실리콘 한 조각 위에 프로세서 전체가 올라갈 수 있다는 발상은 컴퓨터가 무엇이 될 수 있고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를 재설정했다.

TSMC's Fab 12 advanced wafer fabrication complex in Hsinchu, Taiwan
曾 成訓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1978–1990년

설계 혁명과 파운드리 분리

칩이 너무 복잡해져 한 사람이 손으로 배치할 수 없게 되자, 카버 미드와 린 콘웨이의 1980년 교과서는 칩 설계를 가르치고 자동화할 수 있는 구조화된 학문으로 바꾸어 놓았고, MOSIS 셔틀은 대학생들이 처음으로 실제 실리콘을 제조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같은 복잡성 때문에 소규모 설계팀이 자체 팹을 소유하는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모리스 창은 1987년 순수 제조사로서 TSMC를 설립하고 자사의 고객이 된 설계 기업들과 절대 경쟁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분리 문제에 답했다. 결국 업계 전체를 재편한 구조적 발상이었다.

Photolithography equipment used to pattern circuits onto a silicon wafer
Rob Bulmah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1991–2010년

세계적 미세화와 리소그래피 경쟁

1990년대와 2000년대 내내 칩 제조사들은 무어의 법칙을 따라잡기 위해 구리 배선, 액침 리소그래피, 더욱 특이한 재료들을 도입하며 세대를 거듭해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여 나갔다. 1980년대 일본의 메모리 칩 지배는 한국 삼성에, 이후 더 넓은 아시아 제조 기반에 자리를 내주었다.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니콘·캐논이 거의 독점적으로 제작하는 심자외선 리소그래피 스캐너는 업계에서 가장 중대한 병목이 되었다. 지구상 극소수 기업만이 미세화를 이어갈 만큼 정밀한 장비를 만들 수 있었다.

An ASML extreme ultraviolet lithography machine used to manufacture advanced chips
A ansem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2011년–현재

EUV, AI 칩 붐, 그리고 칩 지정학

수십 년과 수백억 달러의 개발 끝에 ASML의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가 2019년 마침내 대량 생산에 진입하며, TSMC와 삼성은 구형 광원의 한계를 넘어 트랜지스터를 계속 축소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 모델 훈련용으로 전용된 엔비디아의 그래픽 칩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칩 수요를 국가적 전략 과제로 바꾸어 놓았다. 수출 통제, 미국 칩스법, 유럽연합·일본·한국의 유사한 보조금 프로그램은 이후 칩이 어디서 설계되고 만들어지고 팔리는지를 명백히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이 직업이 대체한 직업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접 직업들 — 흡수되거나, 자동화되거나, 규제로 사라졌다.

진공관 엔지니어

1900년대–1950년대

트랜지스터 이전에는 라디오, 초기 컴퓨터, 전화 증폭기 모두 취약하고 전력을 많이 먹으며 열을 내는 진공관을 다루는 데 능숙한 엔지니어에 의존했다. 벨 연구소의 1947년 시연 이후 약 10년 만에 트랜지스터가 그 전문 지식 대부분을 쓸모없게 만들었고, 진공관 설계는 대체로 기타 앰프와 몇몇 구식 군사 시스템에서만 살아남았다.

루비리스 마스크 커터

1960년대–1980년대

컴퓨터 지원 설계 도구가 존재하기 전, 칩 레이아웃은 거대한 규모로 손으로 그려 정밀 절단대 위에서 빨갛고 투명한 루비리스 필름을 잘라낸 뒤, 웨이퍼 패터닝에 쓰이는 마스크로 사진 축소되었다. 1980년대의 미드-콘웨이 설계 방법론과 디지털 레이아웃 소프트웨어가 물리적 절단 단계를 거의 완전히 없앴다.

게르마늄 트랜지스터 전문가

1948년–1960년대

최초의 트랜지스터와 이를 안정적으로 제조하는 법을 이해한 엔지니어들은 실리콘이 아니라 게르마늄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1954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고든 티얼의 실리콘 트랜지스터가 훨씬 더 내열성이 강하다는 것이 증명되자, 업계 전체가 실리콘으로 재편되며 게르마늄 전문성은 약 10년 만에 유효한 전문 분야이기를 멈추었다.

사라진 직업들 →

이 역사의 모든 전환점은 같은 형태를 따른다. 실험실 결과가 제조 가능한 제품이 되고, 그 제품은 업계 전체가 달성하려 스스로를 조직하는 목표가 되며, 그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는 곳이 한동안 전략적으로 대체 불가능해진다. 그러다 목표가 다시 바뀐다.

극자외선 리소그래피와 인공지능 칩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전환은 정부가 엔지니어 못지않게 의도적으로 결과를 만들어가는 첫 번째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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