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티의 후계자들은 노변세 대장, 매장부, 무역 장부로 국가의 인구·소득·과세 대상 재산을 추정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레고리 킹의 1696년 잉글랜드 사회 계층 도표는 한 세기 동안 참조되었다. 이 기술에는 계승 명칭이 없었다. 추정 작업은 정부 통계로, 정책적 야심은 정치경제학으로 흡수되었고, 최초의 인구조사국들이 문을 열 무렵 그 이름은 남지 않았다.
정치산술가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중상주의자와 정치산술
민족국가와 대양 무역이 성장하면서 상인과 왕실 자문관들이 무역 흑자와 금은 축적을 촉구하는 팸플릿을 잇달아 내놓았고, 이는 후대에 중상주의라 불리는 느슨한 교리가 되었다. 방법론적으로 오래 남은 도약은 정복된 아일랜드를 조사한 뒤 1670년대에 '정치산술', 즉 노변세 대장과 매장 기록으로 잉글랜드의 인구와 소득, 부를 추정하는 방법을 고안한 의사 윌리엄 페티에게서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왕실 의사 프랑수아 케네를 중심으로 한 중농주의자들이 1758년 『경제표』에서 계급 간 소득 순환을 추적하며 최초의 자의식적인 경제학자 학파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애덤 스미스가 1776년 3월 9일 런던에서 『국부론』을 출간한다. 열 명의 노동자가 노동 분업을 통해 하루 수만 개의 핀을 만드는 핀 공장 이야기로 시작해, 금 축적이나 국가 통제가 아니라 경쟁 속의 자기 이익 추구 교환이 국가의 부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초판은 여섯 달 만에 매진된다.
증권 중개인에서 이론가로 변신한 런던의 데이비드 리카도가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를 출간해, 영국의 옷감과 포르투갈의 와인이라는 양국 예시로 한 나라가 모든 것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어도 무역이 양쪽 모두에 이익이 됨을 보여준다. 두 세기가 지난 지금도 비교우위는 자유무역에 대한 이 학문의 표준 논거로 남아 있다.
그 일은 지금 어디에 있나
희소성을 다루는 학자 — 애덤 스미스의 핀 공장에서 중앙은행 결정실까지, 어떤 모형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예측하라는 요구를 여전히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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