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판사 헨리 필딩이 창설하고 이복형제 존이 확대한 런던 최초의 준전문 수사 조직으로, 피해자나 법원이 지불하는 수수료를 받고 사건을 수사했으며 도시의 주요 도로를 도보와 기마로 순찰하기도 했다. 1830년대에 걸쳐 점차 커지던 수도경찰청 수사국에 흡수되었고, 러너스는 1839년 공식 해체되어 그 기능이 새로운 민간 조직으로 편입되었다.
보 스트리트 러너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도둑잡이, 치안판사, 그리고 최초의 수사관들
파리는 왕실이 임명한 경찰청장 아래 치안을 중앙집권화했지만, 런던은 그 공백을 보상금을 노리는 사설 도둑잡이들로 메웠다. 이 업종은 부패하기 너무 쉬워서, 가장 유명했던 조너선 와일드는 자신이 해결하는 대가로 돈을 받은 절도단을 몰래 운영하기까지 했다. 헨리 필딩의 보 스트리트 러너스와 비독의 파리 쉬르테는 더 책임 있는 체계를 향한 방향을 제시했지만, 아직 어느 나라도 상시 민간 경찰 조직을 갖추지는 못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스스로를 '도둑잡이 대장(Thief-Taker General)'이라 칭하던 런던의 조너선 와일드는 오랫동안 절도를 조직하면서 동시에 같은 장물을 되찾아준 대가로 보상금을 챙겨왔는데,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은 잉글랜드의 사설 보상금 기반 치안 체제에 내재된 부패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소설가이자 런던 치안판사였던 헨리 필딩(Henry Fielding)이 자신의 보 스트리트 법정을 거점으로 소규모의 유급 순경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런던 최초의 준전문 수사 조직이었다. 1754년 헨리가 사망한 뒤에는 이복형제 존 필딩(John Fielding)이 이를 확대했다.
전과자 출신 외젠 프랑수아 비독이 주로 전과자들로 구성된 파리의 새 범죄수사국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사복 감시와 체계적인 범죄 기록 관리를 개척했으며, 이는 유럽 전역의 수사 경찰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 내무장관 로버트 필이 런던 수도경찰청을 창설했다. 상시 근무하는 제복 차림의 중앙집권적 민간 조직이었다. 경찰청장 찰스 로원과 리처드 메인은 경찰관이 대중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는 발상에 기반한 지침을 내렸으며, 이는 훗날 '치안의 9대 원칙'으로 정리되었다.
그 일은 지금 어디에 있나
순찰하고 수사하며 치안을 지키는 선서 경찰관 — 비독의 잠입 수사관과 필의 1829년 순경들로부터 대중의 신뢰가 흔들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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