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폴 시대의 기업용 소프트웨어에서 시스템 분석가는 코드 한 줄 쓰기도 전에 몇 달간 이해관계자를 인터뷰하며 방대한 요구사항 문서를 작성한 뒤, 이후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엔지니어에게 넘겼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애자일과 스크럼의 등장은 이 전달 방식을 무너뜨렸고, 분석가의 업무 대부분은 오늘날의 프로덕트 매니저와 프로덕트 오너 역할로 흡수되었다.
시스템 분석가(Systems analyst)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P&G에서 브랜드 매니지먼트가 태어나다
닐 매켈로이의 1931년 메모는 P&G 내부에서 빠르게 자리 잡는다. 한 세대 만에 수십 명의 '브랜드 담당자'가 각자 하나의 제품의 판매·광고·이익을 마치 독립 사업체를 운영하듯 관리하게 된다. 매켈로이 본인도 사내에서 승진을 거듭해 1948년 사장이 된다. 제너럴 푸즈를 비롯한 다른 미국 소비재 기업들도 이 구조를 모방하기 시작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여전히 비누·식품·생활용품을 파는 마케팅 부서 안에 머물러 있다. 관리할 소프트웨어라는 것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매켈로이의 3쪽짜리 메모는 P&G의 모든 제품마다 판매와 광고를 추적하는 책임자를 한 명씩 두고, 심지어 자사의 다른 브랜드와도 경쟁하게 하자고 제안한다. 브랜드 매니지먼트의 창립 문서다.
도요타는 한 명의 '슈사(주사)', 즉 치프 엔지니어에게 차량의 구상부터 생산까지 전체 개발 권한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이 모델은 훗날 실리콘밸리의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저술가들에게 '한 사람이 제품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근거로 연구되고 인용된다.
히로타카 다케우치와 이쿠지로 노나카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새로운 신제품 개발 게임'을 발표하며, 혼다·캐논·후지제록스의 소규모 자율 조직 팀을 설명한다. 이 논문은 훗날 스크럼에 이름과 럭비 은유를 선사한다.
제프 서덜랜드와 켄 슈와버가 OOPSLA 콘퍼런스에서 스크럼 프레임워크를 처음으로 공개 발표하며, 팀의 백로그 순서를 정하는 '프로덕트 오너' 역할을 공식화한다. 지금도 많은 소프트웨어 프로덕트 매니저가 이 틀을 사용한다.
그 일은 지금 어디에 있나
회사가 다음에 무엇을 만들지,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사람. 고객의 필요, 사업 목표, 엔지니어링의 한계를 하나의 공유된 계획으로 엮어내지만, 그 계획을 온전히 소유하는 사람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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