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 전용 수의약품법이 생기기 전에는 약재상과 떠돌이 행상들이 진단도, 수의사도 없이 농부에게 곧바로 '가축 가루약', '산통 물약', '말 알약' 같은 독점 상품을 팔았다. 20세기 면허법이 치료와 처방을 등록 수의사에게만 국한시키면서 이 전면적인 무규제 소매 거래는 사라졌다.
특허약 판매상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약 500년–1761년
편자공의 천 년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편자공은 대장장이이자 말의 의사 역할을 겸했다. 절름거림, 산통, 상처를 정규 교육이 아닌 도제 제도로 치료했고, 소와 양에 민간요법을 처방하는 떠돌이 '소 치료사'들도 함께 활동했다. 이 방법들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검증할 과학 기관은 존재하지 않았고, 치료의 질은 오로지 장인 개개인의 입소문 실력에 달려 있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1761년
부르줄라, 세계 최초의 수의학교를 열다
클로드 부르줄라가 루이 15세의 명으로 리옹에 왕립 수의학교를 세운다. 가축 질병을 편자공의 민간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다뤄 우역과 싸우려는 목적이었다.
1791년
런던에 수의학교 개교
런던 수의학교(훗날 왕립수의과대학)가 문을 열며 영어권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수의학교로 자리 잡는다.
1865년
우역이 영국의 국립 수의 서비스를 낳다
수의사 J. B. 사이먼즈가 런던의 소에서 우역을 진단한 뒤, 의회는 가축질병예방법을 통과시키고 국가 수의국을 창설한다. 이는 정부 동물보건기관의 초기 모델이 된다.
1884년
USDA가 동물산업국을 창설
미국 최초로 수의학 학위를 받은 다니엘 엘머 새먼이 미국 동물산업국의 초대 국장이 된다. 이는 미국 최초의 연방 수의 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