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별점을 보는 일이야말로 천문학자의 실제 생계 수단이었다. 바빌로니아 학자들은 왕을 위해 하늘을 읽었고, 중국의 흠천감은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황제를 위해 징조를 해석했으며, 행성의 진짜 궤도를 발견한 요하네스 케플러조차 궁정 점성가로 일하며 자신의 물리학 연구 자금을 마련했다 — 그는 점성술을 두고 자신의 지혜로운 어머니를 먹여 살리는 어리석은 딸이라고 썼다. 유럽 천문학은 대학과 학술원이 봉급을 떠맡은 18세기에 걸쳐 이 역할을 벗어던졌다.
궁정 점성가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을 없앴고, 그 자리를 어느 직업이 가져갔는지 정리했다.
사제, 달력, 그리고 최초의 목록들
이집트의 시간 사제들은 신전 의례 시각을 맞추기 위해 별의 출몰을 추적했고, 바빌로니아 서기들은 징조 관측을 수학적 예측으로 바꾸었으며, 중국 궁정 천문관들은 황제를 위해 일식과 '손님 별'을 기록했고, 히파르코스에서 프톨레마이오스에 이르는 그리스 기하학자들은 계산 가능한 우주의 모형을 세웠다. 서기 150년 무렵 로마령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는 이 모든 유산을 이후 14세기 동안 천문학을 지배할 교과서 하나로 압축했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
바빌로니아 서기들은 달과 행성의 밤마다 위치, 날씨, 강 수위, 시장 물가를 함께 기록하는 체계적인 천문 일지를 시작했고, 이는 약 700년간 이어져 인류가 만든 가장 긴 연속 과학 관측 기록이 되었다. 이 기록들로부터 그들은 18년 주기의 사로스 주기를 이용해 일식을 예측하는 법을 익혔고,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원전 747년 이후의 일식 관측에 자신의 천문학을 근거 지웠다.
로도스섬에서 히파르코스는 약 850개 별의 위치와 밝기를 오늘날에도 쓰이는 6단계 등급 척도로 정리한 목록을 완성했다. 자신의 측정치를 한 세기 이상 오래된 그리스와 바빌로니아의 기록과 비교한 그는 세차운동을 발견했다 — 지구의 자전축이 약 26,000년 주기로 하늘을 서서히 원뿔 모양으로 도는 현상으로, 인간 한 생애로는 겨우 1도 남짓 나타나는 효과다.
이스파한과 시라즈의 부이 왕조 궁정에서 활동한 페르시아 천문학자 아브드 알라흐만 알수피는 자신만의 등급 추정치와 아랍의 별 전승을 담아 프톨레마이오스의 별 목록을 비판적으로 수정해 출간했다. 여기에는 안드로메다 은하에 대한 현존 최초의 기록이 '작은 구름'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진짜 정체가 밝혀지기까지는 1920년대까지 기다려야 했다.
뉘른베르크에서 인쇄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태양을 중심에 두고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만들었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인쇄된 첫 책이 코페르니쿠스에게 도착한 날은 그가 프롬보르크에서 세상을 떠난 1543년 5월 24일이었다. 이 책의 진짜 혁명은 이후 70년에 걸쳐 티코, 케플러, 갈릴레이의 손에서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