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이렇게 흘러갔다
서인도제도는 게리 소버스의 132점을 앞세워 1이닝 453점을 기록했고 호주는 노먼 오닐의 181점으로 505점을 냈다. 서인도제도의 2이닝 284점으로 호주에 남은 목표는 233점이었다. 호주는 92점에 위켓 6개를 잃으며 무너지는 듯했으나 앨런 데이비드슨과 주장 리치 베노가 134점을 합작하며 경기를 되돌렸다. 데이비드슨은 이 경기에서 100점 이상과 10위켓 이상을 동시에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마지막 8개 공을 남기고 호주는 6점이 필요했고 위켓은 3개가 남아 있었다. 웨스 홀의 마지막 오버에서 베노가 위켓키퍼에게 잡혔고, 콘래드 헌트가 경계선에서 던진 송구에 웨일리 그라우트가 두 번째 런을 시도하다 런아웃됐다. 점수가 동점이 된 상태에서 마지막 공, 조 솔로몬이 스퀘어 레그에서 스텀프 하나만 보이는 각도로 직접 송구를 맞혀 이언 메키프를 런아웃시켰다. 양 팀 모두 737점, 테스트 역사상 최초의 타이였다. 서인도제도는 프랭크 워렐을 정식 주장으로 세운 첫 시리즈였고, 시리즈가 끝난 뒤 멜버른 거리에는 약 50만 명이 나와 떠나는 선수단을 배웅했다.
왜 지금도 회자되나
1950년대 후반 지루한 저득점 크리켓에 지쳐가던 여론을 단번에 뒤집은 경기다. 이 시리즈는 공격적인 크리켓이 흥행한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두 나라의 대결에는 프랭크 워렐 트로피라는 이름이 붙었다. 워렐이 서인도제도 최초의 정식 흑인 주장으로 인정받는 계기이기도 했으며, 이후 카리브해 크리켓이 20년간 세계를 지배하는 토대가 여기서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