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02일자
토마스컵대회
8-1스코어
프레스턴, 잉글랜드장소
경기는 이렇게 흘러갔다
잉글랜드의 전 올잉글랜드 챔피언 조지 토마스 경은 1939년 남자 국가대항전용 트로피를 기증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첫 대회는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1948~49년에 걸쳐 예선이 치러졌고, 아시아 지역을 통과한 말라야가 유럽의 강호 덴마크와 잉글랜드 프레스턴에서 최종 대결을 벌였다. 형식은 단식 다섯 경기와 복식 네 경기, 모두 아홉 경기였다. 결과는 말라야의 8-1 완승이었다. 덴마크가 건진 것은 아홉 경기 중 단 한 경기뿐이었다. 말라야의 간판은 웡 펭 순으로, 그는 이듬해인 1950년부터 올잉글랜드 남자단식을 네 차례 제패하며 전후 최고의 단식 선수가 된다. 당시까지 이 종목의 중심은 규칙을 만들고 올잉글랜드를 여는 잉글랜드와, 유럽 최강으로 꼽히던 덴마크였다. 그런데 첫 세계 단체전 타이틀은 잉글랜드 땅에서 열린 결승에서 동남아시아의 식민지 팀이 가져갔다. 말라야는 1952년과 1955년까지 3연패한다.
왜 지금도 회자되나
이 한 번의 대결로 배드민턴의 무게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갔고, 그 이동은 이후 한 번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토마스컵이라는 형식 자체도 여기서 확립되었다. 국가끼리 단식과 복식을 섞어 겨루는 방식은 이후 우버컵과 수디르만컵으로 복제되었고, 개인전 대회가 좀처럼 만들지 못하는 국민적 열기를 아시아에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