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recht Dürer · Public domain
야코프 푸거
'부자 푸거'는 아우크스부르크를 기반으로 유럽 최강의 금융 가문을 세워, 합스부르크가에 자금을 대고 티롤의 은광과 헝가리의 동광을 담보로 잡았으며 교황청 계좌까지 관리했다. 그의 대출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의 결과를 좌우했고, 1521년 세운 자선주택단지 푸거라이는 지금도 아우크스부르크 주민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상징적인 저렴한 임대료로 거처를 제공하고 있다.
1519년 막시밀리안 황제가 죽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는 사실상 경매에 부쳐졌다 — 일곱 선제후, 그리고 두 명의 진지한 경쟁자, 합스부르크의 카를과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였다. 푸거는 약 85만 플로린 — 절반 이상을 자기 가문에서 조달했다 — 을 모아 선제후들이 카를을 지지하도록 확보했다. 4년 뒤 상환을 재촉하면서 그는 카를 5세에게 편지로, 자신이 없었다면 황제가 '제위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상기시켰다. 이 편지는 지금도 권력에 대한 금융업의 가장 노골적인 영향력 행사 기록으로 남아 있다.
“권력이 결정되는 곳에 돈을 빌려주고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라 — 채무자의 고마움은 사라지지만 문서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