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이렇게 흘러갔다
1952년 2월 인도 봄베이에서 열린 제19회 세계선수권은 일본이 처음 출전한 대회였다. 거의 무명이던 히로지 사토는 나무 블레이드에 두꺼운 스펀지를 통째로 붙인 라켓을 들고 나왔다. 당시 표준은 얇은 핌플 고무를 씌운 하드배트였고, 선수들은 타구 순간의 딱딱한 소리로 상대 공의 속도와 회전을 가늠하는 데 익숙했다. 사토의 라켓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고, 공은 예상보다 빠르게 날아와 예상과 다른 각도로 튀었다. 하드배트 시대의 강자들이 차례로 무너졌고 사토는 결승에서 헝가리의 요제프 코치안을 꺾어 남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스펀지는 속도와 회전을 동시에 배가시켜, 코스와 인내로 겨루던 기존 게임을 하룻밤 사이에 구식으로 만들었다. ITTF는 이후 라켓 표면의 두께와 구조를 규정으로 묶었지만 방향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일본은 2년 뒤 1954년 런던에서 스웨이슬링컵까지 차지하며 1950년대를 지배했고, 미국의 마티 라이스먼처럼 하드배트를 대표하던 선수들은 이후 수십 년간 스펀지가 이 종목을 망쳤다고 주장했다.
왜 지금도 회자되나
이 한 대회로 탁구의 기술적 시계가 다시 맞춰졌다. 스펀지가 만들어낸 회전과 속도는 공격형 톱스핀을 표준 무기로 만들었고, 오늘날의 루프 드라이브와 근거리 공방은 모두 여기서 출발한다. 동시에 장비가 경기를 바꾸면 규정이 뒤따라간다는 순환이 시작됐다. 러버 두께 규제, 2008년 스피드 글루 금지, 2014년 플라스틱 공 도입까지 이후 70년의 규칙 변화는 모두 1952년 봄베이의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