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08-31일자
올림픽대회
평균대·마루 금메달, 이단평행봉 은메달스코어
올림피아할레, 뮌헨장소
경기는 이렇게 흘러갔다
17세의 코르부트는 단체전에서 이단평행봉의 고봉 위에 서서 뒤로 공중돌기를 한 뒤 다시 봉을 잡는 기술을 선보였다. 훗날 '코르부트 플립'으로 불리게 될 이 동작은 당시 어떤 규정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유럽과 북미의 시청자들은 체조가 이런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목격했다. 그러나 그의 대회는 순탄하지 않았다. 개인종합 결승에서 이단평행봉 연기가 무너져 7.5점을 받았고 순위는 7위로 떨어졌으며, 벤치에서 흐느끼는 장면이 그대로 중계됐다. 다음 날 열린 종목별 결승에서 그는 평균대와 마루를 모두 우승하고 이단평행봉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24시간 사이의 붕괴와 반등이 통째로 방송되면서 코르부트는 하룻밤 사이에 세계적 인물이 됐다. 개인종합 타이틀은 같은 소련 대표팀의 류드밀라 투리셰바가 가져갔지만, 대회가 끝난 뒤 사람들이 기억한 이름은 코르부트였다. 그의 이단평행봉 기술은 이후 안전 문제로 금지됐다.
왜 지금도 회자되나
체조를 전문 종목에서 올림픽 최고 인기 종목으로 바꾼 전환점이다. 방송 카메라가 실수와 눈물까지 따라간 첫 사례였고, 이후 이 종목의 서사는 점수가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짜였다. 미국과 서유럽의 체육관 등록 인원이 이 대회 직후 급증했으며, 4년 뒤 코마네치가 받은 세계적 주목도 코르부트가 만든 시청 습관 위에서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