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공증(공증인가 인증)
한국에는 독일·스페인 같은 나라가 시행하는 정부 공인 선서 번역사 제도가 없다. 이민서류나 법정 제출용 번역은 대신 공증인이 번역가 본인이 서명한 번역확인서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법적 효력을 얻는다 — 공증인이 검증하는 것은 번역의 정확성이 아니라 서명자의 신원과 진술 사실 자체다.
한국에서 번역가는 국가가 관리하는 자격도, 표준화된 채용 경로도 없는 직업이다. 사실상 유일하게 제도화된 관문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GSIT)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GSTI) 두 곳의 입학시험이며, 그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절대다수는 학위 없이 에이전시 테스트나 포트폴리오로 시장에 들어간다. 영어 통번역 시장은 공급 과잉에 가깝지만, 한국외대가 오랫동안 키워온 아랍어·몽골어·베트남어 같은 특수외국어 쪽은 사정이 정반대다.
최근 몇 년의 변화는 전통적인 출판·법률 번역이 아니라 K-콘텐츠 쪽에서 왔다. 웹툰과 K-드라마, 게임의 해외 수출이 늘면서 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기는 일감이 뚜렷이 늘었고, 이는 학위나 국가자격보다 포트폴리오를 우선 보는 새로운 진입로를 열었다. 다만 이 시장은 대부분 프리랜서 외주 구조이며, 늘어난 수요만큼 단가가 따라 오르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번역가로 가는 가장 정통적이고 사실상 유일하게 제도화된 경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GSIT, 1979년 설립)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GSTI, 1997년 설립)이 양대 축이며, 언어별 정원이 적어 입시 경쟁률이 높고 재수가 흔하다. 국제기구·정부·대형 에이전시 채용 공고 상당수가 이 두 학교 학위를 사실상 전제 조건처럼 요구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아랍어·몽골어·베트남어·태국어·페르시아어 등 이른바 특수외국어 학과를 국내에서 가장 폭넓게 운영하며, 이 언어들의 통번역 시장은 사실상 이 학과 출신들이 나눠 갖는다. 영어 시장이 포화 상태에 가까운 것과 달리 이쪽은 공급이 적어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지만, 일감의 절대량 자체가 적어 소득은 들쭉날쭉하다.
네이버웹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이 해외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한국어를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 등으로 옮기는 웹툰·웹소설 번역이 새로운 진입로로 떠올랐다. 통번역대학원 학위보다 번역 포트폴리오와 마감 준수 능력을 먼저 보고, 프리랜서 외주 계약이 대부분이라 단가는 낮지만 학위 없이도 들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다.
넥슨, 엔씨소프트, 크래프톤 등 해외 매출 비중이 큰 게임사들은 자체 로컬라이제이션팀을 사내에 두고 번역가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게임 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툴 숙련도를 우선시하며, 어문학 전공이 아니어도 게임업계 경력이나 강한 포트폴리오로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한국에는 독일·스페인 같은 나라가 시행하는 정부 공인 선서 번역사 제도가 없다. 이민서류나 법정 제출용 번역은 대신 공증인이 번역가 본인이 서명한 번역확인서를 인증하는 방식으로 법적 효력을 얻는다 — 공증인이 검증하는 것은 번역의 정확성이 아니라 서명자의 신원과 진술 사실 자체다.
각급 법원과 검찰청은 재판·수사 과정에 필요한 외국어 통역·번역을 위해 자체 명부를 운영하며, 언어능력 증빙 서류와 면접을 거쳐 등재된다. 국가자격시험은 아니지만 사건당 보수를 받는 공공 부문 일감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유일한 공적 인증 경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시행하는 국가전문자격으로, 언어권별 필기·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름 그대로 관광 안내 통역을 위한 자격이라 문서 번역 실무와는 거리가 있지만, 언어 능력을 국가가 공식으로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자격증이라는 이유로 어문 전공자들이 종종 함께 취득한다.
통번역대학원(GSIT)의 학부 단계로,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주요 언어권별 통번역 학과를 운영한다. 졸업 후 곧바로 실무에 뛰어들거나 같은 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사례가 많다.
한국외대 GSIT와 함께 한국의 정규 통번역대학원을 양분하는 곳으로, 특히 영어·중국어·일본어권 여성 통번역사 다수를 배출해 왔다.
한국문학번역원(LTI Korea)이 직접 운영하는 문학번역 전문 교육 과정으로,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옮길 번역가를 키우는 데 초점을 둔다. 학위 대신 등단·데뷔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통번역대학원과는 결이 다른 경로다.
아랍어과, 몽골어과, 베트남어과, 태국어과 등 국내에서 배우기 힘든 언어를 가르치는 학과들이 모여 있으며, 이 언어들의 통번역 인력 공급 대부분이 이곳 출신에서 나온다.
1996년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으로,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출판을 지원하고 번역아카데미를 통해 자체적으로 번역가를 육성한다.
K-드라마·영화의 해외 흥행이 이어지면서 자막·더빙 로컬라이제이션 수요가 크게 늘었고, 대부분 외주 번역사를 통해 프리랜서 번역가와 연결된다.
해외 매출 비중이 큰 국내 게임사들이 자체 로컬라이제이션 조직을 두고 번역가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게임 수출을 위한 다국어 번역을 사내에서 처리한다.
개발도상국 대상 원조·협력 사업을 수행하며, 사업 현지어와 한국어·영어 사이의 통번역 인력을 프로젝트 단위로 필요로 한다.
통번역대학원, 에이전시, 국제기구 관련 조직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어 지방에 거주하며 이 일만으로 생계를 잇기는 매우 어렵다.
언어별 정원이 한 자릿수에서 10여 명 수준으로 적어 경쟁률이 매우 높고,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해 재수·삼수를 거치는 지원자가 드물지 않다.
실력을 검증할 국가시험이 없다 보니 신뢰는 결국 출신 학교 간판과 에이전시 평판, 입소문에 크게 의존하게 되고, 신규 진입자는 이를 뚫기가 쉽지 않다.
웹툰·드라마·게임 번역 수요는 최근 몇 년간 뚜렷이 늘었지만, 신규 진입자가 몰리는 이 시장의 단가는 오히려 정체되거나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의 번역가 시장은 두 겹으로 되어 있다 — 한국외대·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을 거쳐 국제기구와 대기업으로 가는 좁고 정통적인 길, 그리고 국가자격도 정해진 커리큘럼도 없이 웹툰과 게임 수출 붐을 타고 열린 훨씬 넓지만 불안정한 길이다.
어느 쪽이든 결국 통과시키는 것은 학위가 아니라 실제로 낸 번역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