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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데이비스 vs 알렉스 히긴스

맞대결 · 스누커

조 데이비스
#3

조 데이비스

잉글랜드 · 1919-1964

VS
#11

알렉스 히긴스

북아일랜드 · 1971-1997

지표별 비교

15 세계 타이틀 2
15 세계 결승 진출 4

그래프는 이 목록 1위 기준 상대값입니다.

결론

조 데이비스이(가) 2개 지표 중 2개에서 우위입니다. 역대 랭킹에서는 조 데이비스가 3위, 알렉스 히긴스가 11위입니다.

맞대결 FAQ

공유 지표에서 누가 더 앞설까요?
이 페이지의 공유 학습 지표 2개 중 조 데이비스가 2개에서 앞섭니다.
공개 순위는 어떻게 다를까요?
조 데이비스는 #3, 알렉스 히긴스는 #11로 이 종목 GOAT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실시간 기록인가요?
아닙니다. 막대와 FAQ는 편집용 학습 지표입니다. GOAT 랩에서 선택을 바꿔 다시 맞춰 보세요.

조 데이비스의 논거

스누커의 창시자이자 초대 챔피언이자 최초의 이론가. 데이비스는 프로모터 빌 캠킨과 함께 1927년 세계선수권을 공동 창설해 초대 결승에서 톰 데니스를 20-11로 꺾고 약 6파운드 10실링의 상금을 받았으며, 1946년까지 열린 15회 대회를 전부 우승한 뒤 영구히 물러났다. 그는 세계선수권에서 단 한 경기도 패한 적이 없다. 그는 또한 정상급 빌리어드 프로이기도 해서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세계 빌리어드 타이틀 4회를 차지했으며, 그 종목에서 익힌 포지션 플레이에 대한 이해를 스누커로 옮겨왔다. 1955년 1월 22일 레스터스퀘어홀에서 그는 최초로 공인된 147 맥시멈 브레이크를 작성했다. 그의 지도서들은 스누커가 수비 게임이 아니라 득점 게임이라는 것을 한 세대에게 가르쳤고, 블랙 중심의 브레이크 빌딩을 정설로 확립했다. 그의 경우 시대를 초월한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는 더 느린 장비로 소규모 프로 필드를 상대했지만, 이후 모두가 평가받는 기준 자체를 발명한 인물이다.

알렉스 히긴스의 논거

기록이 그 중요성을 가장 과소평가하는 선수. 히긴스는 아마추어 자격으로 자신의 프로 첫 시즌에 예선을 통과해 1972년 22세의 나이로 세계 타이틀을 차지해 당시 최연소 챔피언이 되었고, 10년 뒤인 1982년에 다시 우승했다. 이때 아내와 딸을 눈물을 흘리며 테이블로 불러 모은 장면은 이 종목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이미지가 되었다. 그는 4번의 세계 결승에 올랐고, 1983년 UK 챔피언십, 1978년과 1981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해 5회의 트리플 크라운 타이틀을 기록했다. 1982년 준결승에서 절망적인 위치에서 지미 화이트를 상대로 작성한 69점 브레이크는 지금도 압박 속에서 나온 최고의 클리어런스로 꼽힌다. 스피드 때문에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관중과 논란을 동시에 몰고 다니며 스누커를 취미가 아닌 스펙터클로 만들었고, 그 대가는 개인적으로 엄청났다. 그는 2010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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