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르미외
모리스 리샤르
지표별 비교
그래프는 이 목록 1위 기준 상대값입니다.
결론
마리오 르미외이(가) 4개 지표 중 3개에서 우위입니다. 역대 랭킹에서는 마리오 르미외가 3위, 모리스 리샤르가 6위입니다.
맞대결 FAQ
공유 지표에서 누가 더 앞설까요?
공개 순위는 어떻게 다를까요?
실시간 기록인가요?
마리오 르미외의 논거
196cm의 신장에 믿기 힘든 손기술을 지닌 마리오 르미외는 아마도 역대 가장 재능이 뛰어난 선수일 것이다. 팀 전체를 제치고 나가거나 힘으로 압도할 수 있는 득점원이었다. '르 마니피크'는 피츠버그 펭귄스와 스탠리컵을 두 차례 우승하고 아트 로스 트로피를 6차례 거머쥐었는데, 이 모든 것을 대부분의 선수라면 커리어를 끝냈을 역경 속에서 해냈다. 만성적인 허리 부상, 그리고 1993년 호지킨 림프종 진단이 그것이다. 그는 마지막 방사선 치료를 받은 바로 그날 밤 경기에 복귀해 뛰었고, 이후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의 경기당 1.88포인트는 상당한 규모의 커리어를 가진 선수 중 최고 기록으로, 그레츠키에게만 뒤진다. 1988-89시즌 199포인트를 기록했고, 1988년 어느 한 경기에서는 5가지 다른 방식으로 골을 넣었다. 5대5, 파워플레이, 쇼트핸드, 페널티 샷, 그리고 엠프티넷 골이었다. 1997년 은퇴했다가 2000년 문자 그대로 파산 위기의 구단을 구해낸 선수 겸 구단주로 복귀해 2006년까지 뛰었다. 건강이 허락해 커리어를 온전히 완주했다면 1위를 둘러싼 논쟁은 매우 다른 양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리스 리샤르의 논거
'로켓'은 하키 최초의 위대한 득점 영웅이자 몬트리올 캐나디언스의 불꽃 같은 영혼이었다. 1944-45시즌 모리스 리샤르는 50경기 만에 50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가 됐고, 이 기준은 수십 년간 이 종목 최고의 득점 위업으로 남았으며, 1957년에는 통산 500골에 도달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그는 1956년부터 1960년까지 기록적인 5연패를 포함해 스탠리컵을 8차례 우승했고, 캐나디언스를 경쟁적인 격정으로 이끌며 퀘벡의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1955년 리그 회장에 의한 그의 출전 정지는 몬트리올에서 '리샤르 폭동'을 촉발했으며, 이 사건은 오늘날 프랑스계 캐나다인 정체성의 분수령으로 평가받는다. 리샤르는 저득점 시대에 통산 544골, 966포인트로 커리어를 마쳤고, 놀랍게도 그 지배력에도 불구하고 하트 트로피를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블루라인부터 그는 위협적이었으며, 골텐더를 향해 돌진할 때 그의 눈이 이글거렸다고 전해진다. NHL의 최다 득점자 트로피는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