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그레츠키
모리스 리샤르
지표별 비교
그래프는 이 목록 1위 기준 상대값입니다.
결론
웨인 그레츠키이(가) 3개 지표 중 2개에서 우위입니다. 역대 랭킹에서는 웨인 그레츠키가 1위, 모리스 리샤르가 6위입니다.
맞대결 FAQ
공유 지표에서 누가 더 앞설까요?
공개 순위는 어떻게 다를까요?
실시간 기록인가요?
웨인 그레츠키의 논거
'더 그레이트 원'이 하키를 지배한 방식으로 주요 스포츠를 지배한 선수는 없다. 그레츠키는 60개가 넘는 NHL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 다수는 영구 불멸일 가능성이 높다. 통산 2,857포인트, 894골, 그리고 손댈 수 없는 1,963어시스트, 이 어시스트 총합만으로도 골 없이 역대 포인트 랭킹 1위를 차지할 정도다. 1981-82시즌 92골, 1985-86시즌에는 무려 215포인트를 기록했고, 아무도 근접하지 못한 51경기 연속 포인트 기록도 세웠다. 에드먼턴 오일러스와 스탠리컵 4회 우승, MVP인 하트 트로피 9회(그중 8회 연속) 수상, 득점왕인 아트 로스 트로피 10회 수상. 1988년 로스앤젤레스로의 트레이드는 하키를 미국에서 진정한 전국구 스포츠로 바꾼 계기로 흔히 평가받는다. 가장 빠른 스케이터도 가장 강한 슈터도 아니었던 그레츠키는 모두보다 한 박자 앞서 경기를 읽었고, 골대 뒤 '사무실'에서 이 종목이 본 가장 다작의 공격을 지휘했다. 그는 결정적인 GOAT이며, 2위와의 격차는 하키 역사상 가장 넓다.
모리스 리샤르의 논거
'로켓'은 하키 최초의 위대한 득점 영웅이자 몬트리올 캐나디언스의 불꽃 같은 영혼이었다. 1944-45시즌 모리스 리샤르는 50경기 만에 50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가 됐고, 이 기준은 수십 년간 이 종목 최고의 득점 위업으로 남았으며, 1957년에는 통산 500골에 도달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그는 1956년부터 1960년까지 기록적인 5연패를 포함해 스탠리컵을 8차례 우승했고, 캐나디언스를 경쟁적인 격정으로 이끌며 퀘벡의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1955년 리그 회장에 의한 그의 출전 정지는 몬트리올에서 '리샤르 폭동'을 촉발했으며, 이 사건은 오늘날 프랑스계 캐나다인 정체성의 분수령으로 평가받는다. 리샤르는 저득점 시대에 통산 544골, 966포인트로 커리어를 마쳤고, 놀랍게도 그 지배력에도 불구하고 하트 트로피를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블루라인부터 그는 위협적이었으며, 골텐더를 향해 돌진할 때 그의 눈이 이글거렸다고 전해진다. NHL의 최다 득점자 트로피는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