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수산티
장닝
지표별 비교
그래프는 이 목록 1위 기준 상대값입니다.
결론
장닝이(가) 2개 지표 중 1개에서 우위입니다. 역대 랭킹에서는 수시 수산티가 5위, 장닝가 6위입니다.
수시 수산티의 논거
수시 수산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인도네시아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미래의 남편 알란 부디쿠수마가 남자단식 금메달을 딴 바로 그날 여자단식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며, 온 국민이 숨죽이고 지켜본 한 편의 국민적 동화를 완성했다. 그는 1993년 세계선수권과 올잉글랜드 4회 우승(1990, 1991, 1993, 1994), 그리고 역대 최다인 월드컵 5회 우승을 추가했다.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꾸준함, 지치지 않는 수비, 흔들리지 않는 승부 근성을 앞세운 그는 1990년대 초 최고의 여자 선수였으며, 여자 경기도 한 나라의 희망을 짊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 선구자였다. 그의 바르셀로나 금메달은 이 종목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이자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정체성의 초석으로 남아 있으며, 그는 역대 최고의 여자 선수 중 한 명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다.
장닝의 논거
장닝은 나이와 예상을 뒤엎고 올림픽 여자단식 금메달을 두 번 딴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에서였는데, 후자는 33세의 나이로 딴 것이라 그는 역대 최고령 올림픽 배드민턴 챔피언이 되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두각을 나타낸 늦깎이였던 그는 2003년 세계선수권과 중국의 여러 우버컵 우승을 더했다. 그의 경기는 화려한 결정타보다는 숨 막히는 꾸준함, 깊은 클리어, 뛰어난 수비를 바탕으로 길고 가혹한 랠리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데 있었다. 베이징 홈그라운드에서 동료 셰싱팡을 꺾고 딴 2008년 금메달은 놀라운 후반전 커리어를 완성했고 여자단식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을 다시 확인시켰다. 이만큼 늦게 전성기를 맞이하거나 이만큼 뜻밖에 올림픽 타이틀을 방어한 챔피언은 드물며, 정상에서 보여준 그의 롱런은 그를 여자 경기가 배출한 가장 조용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선수 중 한 명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