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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경로

프로게이머, 2013년의 연봉 리그와 선수 비자

프로게이머는 하는 일은 2013년의 「연봉 리그와 선수 비자」로 요약된다. 그 요약 옆에 둘 수는 1이다. 채용 공고의 연봉 한 줄을 일의 내용으로 바꾸지 않는다. 사반세기 동안 경쟁적 게임 플레이는 봉급이 아니라 신기함으로 굴러갔다. 1981년 월터 데이가 아이오와주 오텀와에서 설립한 트윈 갤럭시스는 기네스를 위해 오락실 세계기록을 판정했고, 1980년 아타리의 스페이스 인베이더스 챔피언십은 1만 명의 참가자를 끌어모았으며, 닌텐도는 1990년 자사 월드 챔피언십을 미국 전역에서 순회 개최했다. 챔피언들은 텔레비전 출연과 후원사의 여행을 얻었을 뿐 봉

1972년 스탠퍼드 대학 실험실의 스페이스워 대회에서 매진된 스타디움 결승전까지 — 현대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에 데뷔하고 가장 짧게 뛰며 가장 많이 시청되는 선수 생활. 이름이 걸린 상품이 있는 최초의 비디오게임 대회는 1972년 10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열렸고, 그 상품은 잡지 정기구독권이었다. 50년 뒤, 열여섯 살 소년이 뉴욕의 테니스 경기장에서 포트나이트 우승으로 300만 달러를 손에 쥐었고, 비디오게임을 하는 일은 봉급을 받고 방송을 타며 메달까지 딸 수 있는 어엿한 직업이 되어 있었다 — 현대 스포츠 중 선수 생활이 가장 짧고, 스타가 가장 어리며, 진입 확률이 가장 가혹한 축에 드는 직업으로.

이 직업은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한국에서 발명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값싼 초고속 인터넷, 그리고 우후죽순 생겨난 PC방이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를 국민적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한국은 기업 팀, 팀 숙소, 연봉, 스타 선수, 그리고 국가가 공인한 협회까지 — 이후 모두가 베끼게 될 틀을 완전히 세웠고, 서구가 트위치와 프랜차이즈 리그, 8자리 숫자짜리 프랜차이즈 가입비를 통해 이를 따라잡기까지는 그로부터 꼬박 십 년이 더 걸렸다. 이 페이지는 그 스탠퍼드 실험실에서 시작해 한국의 방송 전성기, 스트리밍 붐, 프랜차이즈 골드러시를 거쳐 오늘날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월드컵에 이르기까지 이 직업의 궤적을 좇는다. 선수들이 실제로 어떻게 프로가 되는지와 그 대가는 얼마인지, 열두 시간짜리 스크림 하루가 몸에 어떤 일을 하는지, 이 기예를 정의한 여덟 명의 선수, 그리고 AI가 이미 인간 최고수를 자신들의 게임에서 이겨버린 시대에 이 직업이 얼마나 살아남는지를 다룬다.

경로는 어떤 종목이든 거의 똑같다. 공개 랭크 사다리를 상위 0.1퍼센트도 안 되는 구간까지 올라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챌린저는 대략 서버당 상위 수백 계정을 뜻한다. 이렇게 눈에 띄면 보통 열다섯에서 열일곱 살 사이에 아카데미나 연습생 로스터로 스카우트되고, 그것을 1군 계약으로 전환한다. 지원서 같은 것은 없다. 랭크 사다리 자체가 오디션이며, 그 오디션은 하루 종일 돌아간다.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최상위 리그의 최저 연봉은 한국 LCK의 약 6천만 원부터 북미 LCS의 7만 5천 달러(2023년)까지 걸쳐 있고, 자리 잡은 주전 선수는 낮게는 몇십만 달러대를, 슈퍼스타는 수백만 달러를 번다 — 2021년 중국의 연봉 거품 때는 보도된 정점이 연 500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1군 미만에서는 대부분의 선수가 아주 적게 벌지만, 도타2의 상금 쏠림 덕분에 캡틴 노테일 한 명은 약 720만 달러의 상금을 벌고 은퇴할 수 있었다.

프로게이머을 말할 때 2013년, 「연봉 리그와 선수 비자」, 1을 남긴다. 연봉 숫자는 그 셋의 대체가 아니다. 직업의 글은 들어오는 경로, 하루의 기술, 책임이 끝나는 자리를 나눈다. 프로게이머는 2013년의 「연봉 리그와 선수 비자」에서 그 셋 중 하나를 말하고, 수 1을 그 말에만 붙인다. 한국 독자는 채용 공고로 직업을 먼저 만나므로, 공고의 우대 사항을 일의 역사로 적지 않는다. 자격과 관행과 도구는 서로 다른 문장이다. 한 문장의 수를 다른 문장의 연봉처럼 읽지 않는다.2013년

남겨 둘 숫자

기준 연도
2013년
일의 수
1
직업 이름
프로게이머
업무의 줄
연봉 리그와 선수 비자

영화감독, 1936년의 감독들, 스튜디오에 맞서 조직하다다음 에세이에세이 1000편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