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나 로드니나
카를 셰퍼
지표별 비교
그래프는 이 목록 1위 기준 상대값입니다.
결론
이리나 로드니나이(가) 4개 지표 중 4개에서 우위입니다. 역대 랭킹에서는 이리나 로드니나가 3위, 카를 셰퍼가 7위입니다.
이리나 로드니나의 논거
12년간 무패였으며, 올림픽 금메달 3개를 딴 유일한 페어 선수. 로드니나는 1972년 삿포로에서 알렉세이 울라노프와 우승한 뒤, 울라노프가 다른 파트너를 찾아 떠나자 알렉산드르 자이체프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1976년 인스브루크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에서 또 우승했다. 그사이 1969년부터 1978년까지 세계선수권 10연패와 유럽선수권 11회 우승을 이뤘으며,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출전한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맹렬한 스타니슬라프 주크에게, 이후에는 타티야나 타라소바에게 지도받으며 속도와 완벽한 일치도, 공격적인 템포를 바탕으로 한 스타일을 구축해 소련 페어를 40년간 기준점으로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순간은 1973년 브라티슬라바 세계선수권으로, 프리스케이팅 도중 약 90초 만에 음악이 끊겼지만 로드니나와 자이체프는 무음 속에서 프로그램 전체를 마치고도 우승했다. 챔피언 파트너십을 해체하고 새 파트너와 올림픽 타이틀 2개를 더 딴 것은 이 목록의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성취다.
카를 셰퍼의 논거
1930년대 가장 많은 메달을 딴 남자 선수이자, 컴펄서리 피겨와 프리스케이팅을 잇는 기술적 가교. 빈 출신인 그는 1930년부터 1936년까지 세계선수권 7연패, 1929년부터 시작된 유럽선수권 8연패, 그리고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와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 이후 딕 버튼과 하뉴 유즈루만이 맞먹는 남자부 올림픽 2연패를 이뤘다. 그는 당시 기하학과 퍼포먼스로 점수가 나뉘던 종목의 두 영역 모두에서 탁월했다. 도형을 정교하게 그리면서도 프리스케이팅을 발전시켰고, 원풋 악셀을 창안했으며 훗날 표준 어휘가 된 스핀 자세를 다듬은 공로를 인정받는다. 국가대표급 수영 선수이기도 했던 그는 은퇴 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지도와 안무를 맡았다. 셰퍼는 컴펄서리 피겨가 챔피언십을 완전히 좌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에 경쟁했고, 두 단계 모두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그 능력 덕에 그의 기록은 훗날 이 종목이 결국 도형을 완전히 폐지한 뒤에도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