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1929년의 아카데미, 첫 감독상을 수여하다
영화감독은 하는 일은 1929년의 「아카데미, 첫 감독상을 수여하다」로 요약된다. 그 요약 옆에 둘 수는 1895이다. 채용 공고의 연봉 한 줄을 일의 내용으로 바꾸지 않는다. 동일한 범죄에 대한 네 개의 모순된 목격담으로 구성된 아키라 구로사와의 '라쇼몽'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일본 영화를 세계 관객에게 소개했고, 영화 이론에 '라쇼몽 효과'라는 용어를 남겼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공식 학위나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다. '영화감독'은 법적으로 보호되는 직함이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크리스토퍼 놀란을 포함해 많은 성공한 감독들이 영화학교 학위 없이 경력을 쌓았지만, AFI, USC, 라 페미스, 같은 학교들은 여전히 흔한 경로다. 장비와 멘토링, 독학 감독이라면 혼자 구축해야 할 인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연 단위가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보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편차가 매우 크다. 미국 감독조합(DGA)의 저예산 협약 아래 첫 장편을 찍는 신인 독립영화 감독은 약 6만 7천 달러를 받는 반면, 스튜디오 블록버스터를 맡는 기성 감독은 연출료에 흥행 보너스까지 더해 수천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
감독은 현장과 편집실에서 연기, 카메라, 리듬 등 영화의 창작적 실행을 통제하고, 프로듀서는 자금, 일정, 법적 계약,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판매하는 전체 사업을 관리한다. 대부분의 제작에서 둘은 끊임없이 협상하고 가끔은 한 사람이 두 역할을 겸하기도 하지만, 법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서로 다른 책임을 가진 별개의 직무로 남아 있다. 오퇴르는 프랑스어로 '작가'를 뜻한다. 1950년대 프랑스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들이 발전시킨 작가주의 이론은, 영화 제작이 본질적으로 협업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영화 전체에 개인적 예술적 비전을 새겨 넣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여전히 논쟁적이며, 평론가 폴린 카엘이 1971년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 단독 저작권을 반박한 에세이가 지금도 가장 유명한 도전으로 남아 있다.
AI가 이미 어느 정도 처리하는 작업들, 예를 들어 러프한 스토리보드 작성이나 초벌 편집, 배경 군중 생성 등은 애초에 연출 업무 중 가장 가치가 낮은 부분이었다. 살아남는 것은 실제 혼돈 속의 판단력이다. 불안한 배우에게서 진실한 연기를 끌어내는 일, 다들 괜찮다고 하는 샷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몇 초 만에 알아채는 일, 아무도 본 적 없는 비전을 투자자에게 믿게 만드는 일 같은 것들이다. 정해진 기간이 없다는 것 자체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대부분의 현업 감독은 단편영화나 스태프 경험을 통해 2~5년간 연출을 익히고, 이후 몇 년 더 영화제 서킷에서 명성을 쌓은 뒤에야 데뷔 장편의 투자를 받는다. 첫 단편영화에서 실제 창작 통제권을 가진 첫 유급 연출 일까지 흔히 십 년 이상 걸린다.
영화감독을 말할 때 1929년, 「아카데미, 첫 감독상을 수여하다」, 1895을 남긴다. 연봉 숫자는 그 셋의 대체가 아니다.1929년
남겨 둘 숫자
- 기준 연도
- 1929년
- 일의 수
- 1895
- 직업 이름
- 영화감독
- 업무의 줄
- 아카데미, 첫 감독상을 수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