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1915년의 그리피스, 영화 문법과 남부연합 선전을 동시에 만들다
영화감독은 하는 일은 1915년의 「그리피스, 영화 문법과 남부연합 선전을 동시에 만들다」로 요약된다. 그 요약 옆에 둘 수는 1895이다. 채용 공고의 연봉 한 줄을 일의 내용으로 바꾸지 않는다. 커버리지란 감독이 장면의 와이드 마스터 샷 외에 추가로 촬영하는 미디엄샷, 클로즈업, 리액션 샷 등을 말하며, 이는 편집 단계에서만 드러나는 리듬과 연기 문제를 편집자가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재료가 된다. 완벽하다고 믿는 테이크 하나를 지키려고 커버리지를 생략한 감독은 종종 그 장면이 영화의 다른 부분과 실제로 이어붙지 않는다는 것을 편집 단계에서 뒤늦게 발견한다.
시나리오를 완성된 영화로 바꾸는 사람으로, 모든 샷과 연기와 편집점을 결정한 뒤 프로듀서와 스튜디오와 관객에게 그 비전이 예산을 쓸 가치가 있었음을 설득한다. 영화감독은 시나리오를 움직이는 영상 서사로 완성하는 사람으로, 모든 장면이 어떻게 연출되고 촬영되고 연기되고 리듬을 갖는지 결정한 뒤 그 선택을 프로듀서와 스튜디오, 그리고 결국 관객에게 정당화해야 한다. 촬영장의 그 어떤 직책도 이렇게 많은 동시다발적 결정에 대한 최종 창작 권한을 갖지 않는다. 카메라 위치, 배우의 대사 톤, 조명의 색조, 그리고 한 장면이 완성작에 살아남을지 여부까지.
이 직업은 겨우 한 세기를 조금 넘겼을 뿐이다.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파리에서 최초의 유료 영화 상영을 열었고, 십 년도 채 안 되어 조르주 멜리에스는 카메라를 마술 도구로 바꾸었으며, 그리피스는 클로즈업과 교차편집을 하나의 문법으로 조립했고,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은 의미가 거의 전적으로 편집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구로사와, 프랑스 누벨바그, 뉴 할리우드가 각각 감독의 권한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썼다. 이 페이지는 열 개의 전환점과 다섯 개의 시대를 통해 그 역사를 추적하고, 감독들이 자격증이나 시험 없이 어떻게 훈련받는지 다루며, 블로킹과 커버리지, 배우의 신뢰를 얻는 기술을 분석하고, 매체를 새로 만든 여덟 명의 감독을 조명하며, 아직 아무도 촬영하지 않은 장면을 이미 스토리보드로 그려낼 수 있는 생성형 도구에 이 직업이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를 가늠한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공식 학위나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다. '영화감독'은 법적으로 보호되는 직함이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크리스토퍼 놀란을 포함해 많은 성공한 감독들이 영화학교 학위 없이 경력을 쌓았지만, AFI, USC, 라 페미스, 같은 학교들은 여전히 흔한 경로다. 장비와 멘토링, 독학 감독이라면 혼자 구축해야 할 인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연 단위가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보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편차가 매우 크다. 미국 감독조합(DGA)의 저예산 협약 아래 첫 장편을 찍는 신인 독립영화 감독은 약 6만 7천 달러를 받는 반면, 스튜디오 블록버스터를 맡는 기성 감독은 연출료에 흥행 보너스까지 더해 수천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
영화감독을 말할 때 1915년, 「그리피스, 영화 문법과 남부연합 선전을 동시에 만들다」, 1895을 남긴다. 연봉 숫자는 그 셋의 대체가 아니다.1915년
남겨 둘 숫자
- 기준 연도
- 1915년
- 일의 수
- 1895
- 직업 이름
- 영화감독
- 업무의 줄
- 그리피스, 영화 문법과 남부연합 선전을 동시에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