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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경로

프로게이머, 2000년의 한국, 최초의 e스포츠 산업을 세우다

프로게이머는 하는 일은 2000년의 「한국, 최초의 e스포츠 산업을 세우다」로 요약된다. 그 요약 옆에 둘 수는 1997이다. 채용 공고의 연봉 한 줄을 일의 내용으로 바꾸지 않는다. 온라인 퀘이크 대회 '레드 애니힐레이션'에 약 2천 명이 참가하고, 열여섯 명의 결승 진출자가 애틀랜타 E3에서 맞붙는다. 데니스 '쓰레쉬' 퐁이 우승하며 id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래머 존 카맥이 직접 타던 페라리 328 GTS를 상품으로 받는다. 몇 주 뒤 엔젤 무뇨스가 댈러스에서 최초의 상설 프로 대회 조직인 사이버애슬리트 프로페셔널 리그(CPL)를 창설한다.

경로는 어떤 종목이든 거의 똑같다. 공개 랭크 사다리를 상위 0.1퍼센트도 안 되는 구간까지 올라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챌린저는 대략 서버당 상위 수백 계정을 뜻한다. 이렇게 눈에 띄면 보통 열다섯에서 열일곱 살 사이에 아카데미나 연습생 로스터로 스카우트되고, 그것을 1군 계약으로 전환한다. 지원서 같은 것은 없다. 랭크 사다리 자체가 오디션이며, 그 오디션은 하루 종일 돌아간다.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최상위 리그의 최저 연봉은 한국 LCK의 약 6천만 원부터 북미 LCS의 7만 5천 달러(2023년)까지 걸쳐 있고, 자리 잡은 주전 선수는 낮게는 몇십만 달러대를, 슈퍼스타는 수백만 달러를 번다 — 2021년 중국의 연봉 거품 때는 보도된 정점이 연 500만 달러를 넘기도 했다. 1군 미만에서는 대부분의 선수가 아주 적게 벌지만, 도타2의 상금 쏠림 덕분에 캡틴 노테일 한 명은 약 720만 달러의 상금을 벌고 은퇴할 수 있었다.

반응속도가 떨어져서라는 설명이 흔하지만 가장 근거가 약한 설명이다. 실제 원인은 하루 열에서 열네 시간에 이르는 연습에서 오는 번아웃, 과사용으로 인한 부상 — 중국 최대 스타 우지(지안 쯔하오)는 만성적인 손 부상을 이유로 2020년 스물세 살에 은퇴했다 — 매년 반복되는 로스터 물갈이, 그리고 은퇴한 유명 선수가 방송을 하는 편이 뛰는 것보다 흔히 더 많이 버는 현실이다. 페이커가 스물일곱, 스물여덟 살에 세계 챔피언에 오른 것은 그 한계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디서도 학위나 면허, 졸업장은 필요 없다. 대신 리그들이 나이 제한을 두는데, 라이엇의 1군 리그는 열일곱 살, 과거 오버워치 리그는 열여덟 살이었다. 2014년 로버트 모리스 대학교의 첫 정규 종목화 이후 대학들이 e스포츠 장학금을 만들어왔고, 스태퍼드셔 대학교는 2018년 e스포츠 학사 과정을 개설했지만, 이런 경로는 대체로 선수 생활보다는 코칭, 제작, 매니지먼트 같은 업계 일자리로 이어진다.

관할권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2013년부터 프로게이머에게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운동선수 비자인 P-1A를 발급해왔고, 중국은 2019년 '프로게이머'를 공식 직업으로 등재했으며, 아시안게임은 2023년 항저우 대회에서 e스포츠를 정식 메달 종목으로 채택했고, IOC는 올림픽 e스포츠 게임을 발표했다. 반면 독일 올림픽스포츠연맹은 2018년 e스포츠를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표준적인 1군 하루는 다른 프로팀과 겨루는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짜리 스크림 두 블록에 개인 랭크 게임과 영상 리뷰가 더해져, 통상 주 6일 하루 열에서 열네 시간에 이른다. 한국의 팀 숙소가 2000년대에 이 형식을 만들어 전 세계로 수출했고, 최상위 조직들은 이제 헬스장과 물리치료사, 수면 코치로 이를 완화하고 있다 — 이 일정이 선수 생명을 눈에 띄게 단축시켰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을 말할 때 2000년, 「한국, 최초의 e스포츠 산업을 세우다」, 1997을 남긴다. 연봉 숫자는 그 셋의 대체가 아니다.2000년

남겨 둘 숫자

기준 연도
2000년
일의 수
1997
직업 이름
프로게이머
업무의 줄
한국, 최초의 e스포츠 산업을 세우다

영화감독, 1925년의 예이젠시테인, 몽타주를 체계화하다다음 에세이에세이 1000편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