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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경로

경제학자, 1890년의 마셜, 이 분야를 전문직화하다

경제학자는 하는 일은 1890년의 「마셜, 이 분야를 전문직화하다」로 요약된다. 그 요약 옆에 둘 수는 40이다. 채용 공고의 연봉 한 줄을 일의 내용으로 바꾸지 않는다.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 학문에 창설 문헌을 주었고, 한 세기 동안 영국의 정치경제학이 지배했다. 무역과 지대를 다룬 리카도, 인구를 다룬 맬서스, 1848년 종합서 『원리』를 쓴 존 스튜어트 밀,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반론을 편 마르크스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는 공개적이고 논쟁적이며 의회 의원들이 다툴 만큼 비기술적이었고, 동시에 논란의 여지도 커서 토머스 칼라일이 1849년 노예제에 반

이 명칭 아래 세 갈래 길이 공존한다. 연구와 강의를 하는 학계, 중앙은행·정부부처·IMF 같은 기구의 정책 경제학자, 은행·컨설팅·테크 기업의 민간 부문 경제학자다. 일상 업무는 어디서나 비슷하다. 데이터를 정리하고, 모형을 추정하고, 글을 쓰고, 그 결과를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이다. 법적으로는 아니다. 이 명칭은 어디서든 보호받지 않는다. 실제로는 대학, 중앙은행, 국제기구의 연구직이 사실상 박사 전용이지만, 정부부처와 상업은행, 컨설팅사는 석사급에서 채용하며 영국의 정부경제서비스(GES)는 학사 졸업자를 곧바로 채용한다. 박사학위는 이 직업 전체가 아니라 연구 트랙의 통행증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미국 중위 연봉은 약 11만 5천 달러였고, 연방준비제도와 IMF 소속 경제학자는 그보다 높으며 대형 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0만 달러 이상을 번다. 명목 기준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훨씬 낮다. 인도나 브라질의 정부 경제학자는 동일한 업무에도 미국 수치의 극히 일부만 받는다. 엄밀히는 아니다. 정식 명칭은 '스웨덴 중앙은행이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 기념 경제학상'으로, 스웨덴 중앙은행이 1968년에 제정해 1969년 처음 수여했다. 원래의 노벨상들보다 68년 늦다. 같은 스톡홀름 시상식에서 같은 상금과 함께 수여되기 때문에 경제학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냥 노벨상이라 부른다.

2008년 11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을 방문했을 때 정확히 이 질문을 던졌다. 영국학사원의 서면 답변은 '많은 명석한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력의 실패'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표준 거시경제 모형이 금융 시스템 자체를 아예 빠뜨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은행업과 신용을 주류 모형에 다시 편입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 재구축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금융 분석가는 투자 결정을 돕기 위해 개별 기업과 증권의 가치를 평가하며 대개 CFA 과정을 통해 자격을 얻는다. 경제학자는 인플레이션, 고용, 무역, 빈곤 등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하며 그에 대한 인과적 질문을 던진다. 훈련 과정도 이에 따라 갈린다. 분석가는 회계와 밸류에이션을, 경제학자는 계량경제학과 모형화를 보통 석사나 박사 과정에서 익힌다.

경제학자을 말할 때 1890년, 「마셜, 이 분야를 전문직화하다」, 40을 남긴다. 연봉 숫자는 그 셋의 대체가 아니다. 직업의 글은 들어오는 경로, 하루의 기술, 책임이 끝나는 자리를 나눈다. 경제학자는 1890년의 「마셜, 이 분야를 전문직화하다」에서 그 셋 중 하나를 말하고, 수 40을 그 말에만 붙인다. 한국 독자는 채용 공고로 직업을 먼저 만나므로, 공고의 우대 사항을 일의 역사로 적지 않는다. 자격과 관행과 도구는 서로 다른 문장이다. 한 문장의 수를 다른 문장의 연봉처럼 읽지 않는다.1890년

남겨 둘 숫자

기준 연도
1890년
일의 수
40
직업 이름
경제학자
업무의 줄
마셜, 이 분야를 전문직화하다

기업가, 1911년의 슘페터의 혁신가다음 에세이에세이 1000편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