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섹션으로 건너뛰기
일의 경로

데이터 과학자, 1977년의 튜키의 '탐색적 데이터 분석'이 상자그림을 대중화하다

데이터 과학자는 하는 일은 1977년의 「튜키의 '탐색적 데이터 분석'이 상자그림을 대중화하다」로 요약된다. 그 요약 옆에 둘 수는 2008이다. 채용 공고의 연봉 한 줄을 일의 내용으로 바꾸지 않는다. 각각 링크드인과 페이스북에서 데이터팀을 꾸리던 DJ 파틸과 제프 하머바커가 자신들의 팀이 하던 통계와 엔지니어링이 결합된 업무를 가리켜 독립적으로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업명을 정착시킨다.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고 예측 모델을 만드는 직업 — 2008년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3세기에 걸친 증거 수집·검증·시각화의 역사가 있다. 데이터 과학자는 통계학, 프로그래밍, 도메인 지식을 활용해 데이터에서 패턴과 예측, 권고안을 이끌어낸 뒤, 기업이나 정부 기관, 연구팀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결과로 바꾸는 사람이다. 업무는 데이터 웨어하우스에서 데이터를 뽑아내는 SQL 작성부터 데이터 정제와 재구성, 통계·머신러닝 모델 적합,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을 뒷받침하고 무엇을 뒷받침하지 않는지 설명하는 일까지 이어진다.

이 직업명은 그 뒤에 있는 기술보다 훨씬 젊다. '데이터 과학자'라는 이름은 2008년 무렵 DJ 파틸과 제프 하머바커가 각각 링크드인과 페이스북에서 데이터팀을 꾸리며 독립적으로 정착시킨 표현이며, 통계학자 윌리엄 S. 클리블랜드가 '데이터 사이언스'를 학문 분야로 제안한 것은 2001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근본이 되는 학문 자체는 훨씬 오래되어, 존 튜키가 1960~70년대에 밀어붙인 탐색적 데이터 분석을 거쳐 로널드 피셔의 1920년대 통계학, 그리고 1662년 존 그란트의 런던 사망 기록 연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이를 '21세기 가장 섹시한 직업'이라 부른 기사는 10년에 걸친 기업 채용 붐과 수백 개의 새로운 대학 프로그램을 촉발했다. 그 붐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어, 이 포괄적 직업명은 애널리틱스 엔지니어링, 머신러닝 엔지니어링, 프로덕트 애널리틱스로 분화되었고, AI 도구들은 원래 이 직업이 사람의 손으로 하리라 가정했던 정형화된 질의·정제·차트 작업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처리하고 있다. 'AI 모델을 만든다'는 이미지와 달리, 대부분의 하루는 데이터를 뽑고 정제하는 SQL· 코드 작성, 통계 검정이나 모델 학습, 그리고 그 결과를 비전문가 이해관계자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차트나 메모로 옮기는 작업으로 나뉜다. 실무자 설문조사는 일관되게 데이터 정제와 준비가 전체 근무 시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고한다.

데이터 과학자을 말할 때 1977년, 「튜키의 '탐색적 데이터 분석'이 상자그림을 대중화하다」, 2008을 남긴다. 연봉 숫자는 그 셋의 대체가 아니다.1977년

남겨 둘 숫자

기준 연도
1977년
일의 수
2008
직업 이름
데이터 과학자
업무의 줄
튜키의 '탐색적 데이터 분석'이 상자그림을 대중화하다

외교관, 1648년의 베스트팔렌 평화조약다음 에세이에세이 1000편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