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의 아멜리아 에어하트: 두 번째 출발 · 245
아멜리아 에어하트은 1937년에 「두 번째 출발」로 묶인다. 그 묶음에서 빠지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수는 1937이다. 추리의 결말처럼 읽지 않고, 공개된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만 남긴다. 유산을 닫은 캘리포니아 절차. 민사적 종결이지 잔해 보고가 아니다. 사건의 글은 누가, 언제, 어떤 수가 기록에 남았는지를 말한다.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1937년의 「두 번째 출발」로 열리고, 수 1937이 그 열림을 고정한다. 한국 독자가 영상물로 먼저 알았더라도, 영상물의 대사를 공개 기록인 것처럼 적지 않는다. 미제와 확정, 의혹과 판결은 동사를 달리 한다. 피해자 가족의 이름을 호기심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1937년 7월 2일 아멜리아 에어하트와 항법사 프레드 누넌이 라에–하울랜드 구간에서 사라졌다. 확인된 기체나 유해는 없다. 이미 대서양 단독 횡단 최초 여성 비행사였던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1937년 5월 오클랜드를 떠나, 퍼듀 대학 지원이 큰 몫을 한 록히드 모델 10-E 일렉트라(민항 등록 NR16020)로 적도 위도 세계 일주를 두 번째 시도했다. 3월 하와이 루크 필드 이륙 사고 이후 경로는 동행으로 뒤집혔다. 항법사 프레드 누넌이 합류했다. 6월 말 일렉트라는 아프리카·남아시아·네덜란드령 동인도를 거친 공개 홉 끝에 뉴기니 라에에 도착했다.
1937년 7월 2일 에어하트와 누넌은 라에를 떠나 하울랜드 섬으로 향했다. 산호 점 하나에서 미국 해안경비대 커터 이타스카가 무선·급유선으로 기다렸다. 이타스카는 에어하트의 음성을 들었고, 하울랜드 시각 약 08시 43분 마지막 송신은 157–337 라인 위에 있으며 라인을 따라 달린다는 내용이었으나 기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방향 탐지와 주파수 불일치로 커터는 그녀의 말을 듣는 횟수가 그녀가 커터를 듣는 횟수보다 많았다. 해군과 해안경비대의 중부 태평양 수색은 확인된 잔해를 찾지 못했다. 에어하트는 1939년 1월 5일 사망 선고를 받았다. 공식 작업 이론은 하울랜드 부근에서 연료가 떨어져 해상에 불시착한 것이다. 뒤의 민간 집단, 특히 는 피닉스 제도 가드너 섬(니쿠마로로) 착륙을 주장해 왔다. 일본 나포 이야기는 전문 역사가가 받아들이는 문서 궤적을 낳지 못했다. 어떤 법원이나 군 위원회도 일렉트라 잔해를 확인하지 않았다. 사건은 미제이다.
에어하트의 실종은 공개된 항법·통신 실패이다. 유명한 조종사, 얇은 섬, 목소리는 들었으나 기체를 끌어들이지 못한 커터. 하울랜드 섬에는 이 비행을 위해 새 활주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타스카의 일은 에어하트를 불러들이고 무선 방위를 잡는 것이었다. 일렉트라가 쓴 주파수와 견인 안테나 배치는 7월 2일 아침 커터에 신뢰할 양방향 링크를 주지 못했다. 뒤에 출판되고 많이 분석된 이타스카 로그는 그녀가 30분마다, 이어서 더 낮은 연료를 보고하고 방위를 요청한 뒤, 마침내 157–337 태양 라인 위에서 남북으로 달린다고 말한 것을 보여 준다.
1937년의 아멜리아 에어하트에서 남길 수는 1937이고, 줄은 「두 번째 출발」이다. 확정과 의혹을 같은 동사로 쓰지 않는다.1937년
남겨 둘 숫자
- 사건이 묶인 해
- 1937년
- 같이 적는 수
- 1937
- 사건의 이름
- 아멜리아 에어하트
- 기록의 줄
- 두 번째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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