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오 가토
스베틀라나 호르키나
지표별 비교
그래프는 이 목록 1위 기준 상대값입니다.
결론
측정된 지표에서는 완전한 백중세입니다. 역대 랭킹에서는 사와오 가토가 8위, 스베틀라나 호르키나가 10위입니다.
사와오 가토의 논거
남자 체조선수 중 가장 많은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 가토는 1968년 멕시코시티, 1972년 뮌헨, 1976년 몬트리올 세 대회에서 금메달 8개를 포함한 총 12개의 메달을 획득했으며, 근대 체조에서 올림픽 개인종합을 두 차례(1968년, 1972년) 우승한 단 두 명 중 하나다. 그는 남자 체조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의 중심 인물이었다. 일본은 1960년부터 1976년까지 올림픽 단체전 5연패를 이뤘고, 가토는 그중 마지막 세 번에 함께했다. 그의 주 종목은 평행봉으로 1972년과 1976년 모두 금메달을 땄지만, 그의 명성은 이후 두 세대 뒤 우치무라 고헤이가 이어받게 될 라인, 진폭, 고정 착지를 중시하는 기술적 순수성에 바탕을 뒀다. 그는 대부분의 선수라면 커리어를 끝냈을 어깨 부상을 안고 1972년 대회를 소화하며 금메달 3개를 땄다.
스베틀라나 호르키나의 논거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단평행봉 선수이자 10.0 시대 마지막 위대한 스타일리스트. 호르키나는 1997년, 2001년, 2003년 세계선수권 개인종합 타이틀 3개를 획득해 바일스가 나오기 전까지 여자 최다 기록을 세웠고, 세계선수권 메달 20개(금메달 9개 포함)를 쌓았다. 두 번의 올림픽 금메달은 모두 이단평행봉에서 나왔다. 1996년 애틀랜타와 2000년 시드니였다. 올림픽 메달은 총 7개다. 키 1.65미터로 이 종목의 표준 체형보다 훨씬 커서 도마와 평균대에서는 불리했지만, 그 덕분에 이단평행봉에서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진폭을 보여줬고, 채점 규정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여러 요소가 남아 있다. 그의 커리어는 이 시대의 논쟁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0년 올림픽 개인종합 결승을 망친 도마 높이 오조정 사고부터, 그가 가장 원했던 타이틀을 앗아간 채점에 대해 거침없고 종종 신랄했던 공개 비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