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톰바
장클로드 킬리
지표별 비교
그래프는 이 목록 1위 기준 상대값입니다.
결론
알베르토 톰바이(가) 5개 지표 중 2개에서 우위입니다. 역대 랭킹에서는 알베르토 톰바가 8위, 장클로드 킬리가 12위입니다.
맞대결 FAQ
공유 지표에서 누가 더 앞설까요?
공개 순위는 어떻게 다를까요?
실시간 기록인가요?
알베르토 톰바의 논거
'톰바 라 봄바'는 알프스 마을 사람들만 지켜보던 종목을 이탈리아의 국민적 이벤트로 만들었다. 그는 슬라롬 35승, 자이언트슬라롬 15승을 합쳐 통산 50승과 올림픽 금메달 3개를 거뒀다. 1988년 캘거리에서 두 기술 종목을 모두 제패했고, 1992년 알베르빌에서 자이언트슬라롬 타이틀을 방어하며 같은 종목에서 두 대회 연속 우승한 최초의 알파인 선수가 되었다. 그는 3회 연속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 종합 크리스털 글로브는 1995년으로 늦게 찾아왔고, 1996년 시에라네바다 세계선수권에서 슬라롬-자이언트슬라롬 2관왕으로 마무리했다. 숫자만으로는 그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톰바는 이례적인 다리 힘을 바탕으로 한 물리적이고 공격적인 라인으로 경주했고, 2차 활주를 극적인 무대로 바꿔놓으며 4~5위권에서 뒤집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의 슬라롬 경기 당시 이탈리아 TV 시청률은 이 종목에서 이후 다시 나온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장클로드 킬리의 논거
이 목록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응축된 커리어. 킬리는 1967년과 1968년 첫 두 번의 월드컵 종합 타이틀을 차지했고, 첫 시즌에는 16전 12승을 거뒀는데, 그 이후 어떤 선수도 근접하지 못한 시즌 승률이다. 이후 1968년 그르노블 올림픽에서 활강, 자이언트슬라롬, 슬라롬을 모두 제패해 토니 자일러와 함께 한 대회 3관왕을 달성한 유일한 두 남자 선수가 되었다. 그는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던 서킷에서 통산 18승을 거뒀고, 1966년과 1968년 세계선수권 복합 타이틀을 추가했다. 24세에 은퇴한 그는 이 종목 최초의 현대적 상업 스타가 되었고, 이후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고 IOC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 목록에서의 그의 순위는 재능이 아니라 시대적 한계를 반영한다. 단순히 그가 지배할 만한 장기 서킷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